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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의 신을 제거해 달라!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서초동의 한 대형교회가 예배당 건물을 완성한 후 걸어놓았던 휘장의 글 내용입니다. 그 교회의 목사와 교인들에게는 무척 감동스러운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겐, 모든 것이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자신은 일 원 한 푼도 취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작금의 대통령의 말과 아주 비슷한 느낌의 내용으로 다가옵니다. 그분들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로 그런 글을 달아놓았겠지만 제겐 하나님께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시느라 많이 힘 드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론 제가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수천억 원을 들여 그런 엄청난 예배당을 지으라고 하셨을까요?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옛 이스라엘이 성전을 도에 지나도록 크게 지을 것을 염려하여 길이 너비 높이까지 정해주셨습니다. 길이가 27미터, 너비가 9미터, 높이가 13.5미터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크고 화려하게 짓고자 했던 헤롯 대왕도 성전이 아니라 이방인의 뜰만을 넓게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과거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수메르 문명의 지구라트는 이스라엘 성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높았습니다. 그래서 성서는 바벨탑이 하늘에 닿을 만큼 높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휘장을 달아놓은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 마음속에 가두어 놓고 자기의 욕망을 투사하여 엄청난 건물을 지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가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속에 가두어 놓고 그것을 절대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한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자신의 유한한 경험 체계 속에 절대화하고 고정시킴으로서 하나님을 자신의 인식 범위 안에 가두어 놓았다는 말입니다. 

종교가 제도화 되면 그 종교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성과 정형성을 토대로 삼기 마련입니다. 이단들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의 하나님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들은 자신이 마치 하나님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 있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다 아는 하나님이란 그저 인간의 창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그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종교가 유지되고 확대 재생산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예전과 교리와 제도적 조직화를 통해서 고착될 수 없는 것을 고착화하고, 확실할 수 없는 것을 확실한 것으로 정형화함으로써 종교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져 본래의 진리와는 동떨어진 하나의 종교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인간의 유한한 인식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을 파악 가능한 것으로 만듦으로서 종교는 그 종교의 존재의미를 상실하고 왜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시 그러한 종교의 탄생 과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칼 라너와 같은 신학자는 '신은 없다.'고 말했고 중세의 신비주의자 엨크 하르트는 "나는 신에게 내 속의 신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한다.(I pray God to rid me of God)"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노자 역시 '道可道 非常道-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유한자인 인간이 무한자인 신을 자기 안에 가둔 것을 지적하는 내용들입니다. 그 어떤 위대한 인간도, 어떤 영적인 인간도 인간 너머의 존재인 하나님과 인간의 인식 너머 존재하는 진리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절대화할 수 없고, 또 그래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절대화의 덫에 빠지는 순간, 근원적인 종교의 왜곡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사가 된 후 오래도록 그러한 현상들을 목격해왔습니다. 특히 칼빈의 개혁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성령의 검을 소유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씀을 마구 휘둘러 다른 이들을 폄훼하거나 적대시하였습니다. 특히 그들이 이단이라 여기는 가톨릭에 대해 조금이라도 호의가 섞인 내용을 말하면 마치 사단을 대하듯이 적대감을 드러내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절대화의 덫에 빠진 것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장로교 교단이 수백 개가 넘고 지금도 여전히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절대화의 덫에 빠진 사람들의 숙명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절대화에 빠진 사람들에게서는 사랑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학과 교리에 생명을 걸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참고 기다려주어야 하는 사랑의 속성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강조하면서도 막상 자신에게는 그 사랑이 조금도 없다는 사실은 정작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정통교회를 다닌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잘 믿으면 잘 믿을수록 권위주의적이 되고 사나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유한한 인식과 경험 체계 안에 무한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절대화하고 고정시키려는 종교적 욕구를 극복하고 내 안에 갇힌 하나님을 제거함으로써 하나님을 다시 하나님 되시게 해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거나 없다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긍정임을 깨닫고 다시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은혜를 경험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가능한 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근사치적 진리(approximate truth), 또는 관계적 진리(relational truth)만이 하나님과 진리를 왜곡하지 않고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절대자 앞에 선 인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인간의 모습을 아침 일찍 장작을 지고 어린 아들 이삭의 손을 잡고 모리아산을 향하는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2013년 11월 30일 서초 사랑의교회 새예배당 입당감사예배(사진:사랑의교회)

인간은 결코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와 같은 말을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그것은 가능한 것만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이 도달하게 되는 자기기만과 아전인수 격인 하나님 이해에서만 나올 수 있는 말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불가능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은 크고 화려한 예배당이 아니라 성령에 이끌리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크고 화려한 예배당은 가능한 것이지만 성령에 이끌리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동체에서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수 있지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경험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무리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려 해도 인간으로서 우리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공동체에서 성취감이 아니라 오히려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자기의 한계를 발견하지만 그러나 그만큼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더불어 함께 살아감'이라는 타자지향적인 그리스도인 본연의 모습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무의미한 삶, 무관심한 삶, 절망의 삶이라는 현재의 실존에서 해방되어 희망으로 드러나는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그 삶이야말로 복음이 말하는 참된 삶이며, 이 땅에 복음이 필요한 진짜 이유입니다. 

불가능에의 열정으로 하나님을 하나님 되시게 하는 성령의 역사가 이 땅에 불기를 소망해봅니다. 

최태선  tschoi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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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또 따라하는 교회 (69.XXX.XXX.146)
2016-12-23 10:35:26
찬성:5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아하, OC의 베델교회가 이걸 따라하는거였군요. 저 옆으로 늘어진 스크린을 보니 왜 그 많은돈을 들여 교체했는지 알겠어요. 순악질여사 눈썹이 생각나네 ㅋㅋㅋ, 또 이번엔 선교관과 수양관을 짓겠다는데, 애휴, 지금 있는 빚이나 갚지, 하나님 힘드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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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107.XXX.XXX.92)
2016-12-24 07:21:04
찬성:4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그 교회 다니다 오신분이 있어서 최근얘기를 들은적이 있어요. 왜 목사님들은 자신의 업적에 교회건물과 성도숫자를 꼭 넣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새로 담임목사가 왔다고 하더니 이전보다 더한가보죠? 하나님만 힘든게 아니라 거기 성도분들도 쬠 힘들어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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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는 대형교회 (96.XXX.XXX.98)
2016-12-25 13:11:20
찬성:3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이런거 볼때마다 짜증난다. 잘된건 기도 빡세게해서 된거고 티내기 민망한건 하나님이 했다고 하고, 저 큰 화면을 보면 신앙심이 두배로 절로 생겨나나보지? 성도들 돈 제발 펑펑 쓰지말고 불우한이웃이나 돌아보면 안될까? 하긴 일해서 돈벌어본 적없고 신문과 책몇개 짜집기해서 근사하게 설교하고 몇십만불씩 연봉받는 목사들이 가난한 이웃이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그러고도 은혜받는다고 아멘하는 성도들? 정말 봉이다 봉. 베델교회가 선교관을 짓는다고? 그 교회는 선교도 제대로 안하면서 그런걸 왜짓는건지? 그냥 남의 돈이니 부동산 투자나 하고 싶은건 아닐런지. 신임 담임목사가 맨날 해외로 놀러다니기만 한다고 소문났던데 돈질하는데 근사한 이름으로 왠 포장씩이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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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또 따라하는 교회 (69.XXX.XXX.146)
2016-12-23 10:35:26
찬성:5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아하, OC의 베델교회가 이걸 따라하는거였군요. 저 옆으로 늘어진 스크린을 보니 왜 그 많은돈을 들여 교체했는지 알겠어요. 순악질여사 눈썹이 생각나네 ㅋㅋㅋ, 또 이번엔 선교관과 수양관을 짓겠다는데, 애휴, 지금 있는 빚이나 갚지, 하나님 힘드시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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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107.XXX.XXX.92)
2016-12-24 07: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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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교회 다니다 오신분이 있어서 최근얘기를 들은적이 있어요. 왜 목사님들은 자신의 업적에 교회건물과 성도숫자를 꼭 넣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새로 담임목사가 왔다고 하더니 이전보다 더한가보죠? 하나님만 힘든게 아니라 거기 성도분들도 쬠 힘들어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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