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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복음주의, 껍데기만 남았다트럼프 당선을 본보기로 한국교회가 준비해야 할 것
 ※ 본 글에서 보수주의와 복음주의를 묶고, 남부 백인들을 일반화한 것은 현재 트럼프 현상을 좀 더 명확히 보기 위한 전략적 표현입니다. 보수주의와 복음주의는 분리될 수 있으며 인종과 색깔을 넘어선 미국의 백인들 또한 많다고 생각합니다. - 글쓴이 주

2004년 조지 W 부시는 재선에 성공하고 싶었다. 미국 보수주의(이하 복음주의라 칭함)의 가치를 들고 나왔다. 낙태를 반대하고 유전자조작을 죄악이라 명명했다. 그때 나는 미국 한 시골 마을에서 똑똑하고 신앙심 깊은 한국계 미국인 대학생과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 부시를 지지해요. 낙태와 유전자조작을 반대하기 때문이죠. 그건 성경적이지 않잖아요"라고 말했다. 세계 갈등의 중심이자 전쟁 국가의 한 시민이 오로지 몇 가지 기독교 가치만을 내세워 부시를 지지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승리의 주역이 미국의 복음주의라고들 한다. 확실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으나 복음주의자 81%가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겨운 미국 하층민들이 길게 늘어선 투표소의 줄을 지나칠 때, 복음주의 백인들은 너도나도 달려 나가 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가 승리했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자본주의 특징을 설명할 때, 무카페인 다이어트 콜라를 예로 든다[<무너지기 쉬운 절대성>(인간사랑) 3장]. 원래 콜라는 의약품이었다. 콜라의 카페인은 강한 각성 효과가 있었고 과다한 설탕량은 기분 전환에 도움을 주었다. 마치 옛날 박카스를 음료처럼 마셨던 것처럼, 콜라는 이후 의약품이 아닌 음료로서 전 세계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문제는 무카페인 다이어트 콜라가 등장한 뒤부터다. 카페인과 설탕을 완전히 제거한 음료인 '콜라'를 마시면서도 사람들은 큰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원래의 핵심이 완전히 제거된 콜라를 마시면서도 우리는 그 전에 느꼈던 '청량감'과 '효과'를 기대한다.

논리적으로 무카페인 다이어트 콜라는 콜라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조차 못한다. 지젝은 이것이 자본주의가 욕망을 소비시키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면서 단맛의 콜라를 욕망하듯이, 욕망을 채워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욕망을 극대화시킨다. 그 중심이 제거되고 이름만 남은 상품이 더 경쟁력 있는 상품이 되는 사회. 바로 자본주의 사회다.

우리는 보통 시카고의 화려한 마천루와 뉴욕의 멋진 도시 풍경을 상상하며 미국을 그린다. 다양성과 인권이 존중되고 흑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멋진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 시간을 운전해 시골 중심지를 돌아보면, 상상 외로 미국은 유색인종(흑인·히스패닉·동양인)들이 백인들로부터 소외된 나라이고 자신들이 세계 중심이라 생각하는 남부 백인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남부 백인들의 정신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소위 '복음주의적 신앙'이다. 이들은 20세기 막바지에 있던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미국 정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다. 지금 미국 복음주의를 이끌어 가는 세대는 50~60대로 경제력을 소유한 백인이거나 그들의 도움을 갈구하는 하층민이다.

백인 하층민은 자신의 불행을 타인에게서 찾는다. 기독교의 가치를 무시하는 이교도와 낙태를 허용하는 진보주의자, 그리고 동성애가 그들의 행복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오마바 정권의 FTA(자유무역협정) 실패로 미국 중산층의 직장이 사라지자, 그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이교도를 심판할 메시아를 선택한 것이다. 트럼프는 그렇게 미국 복음주의의 메시아가 되었다.

이제 미국의 복음주의는 이름만 남은 것 같다. 기독교의 가치를 외치지만 세속적 세계에 기독교 국가를 세우고, 진정한 시민혁명을 꿈꾸었던 (그것이 가능하든 아니든 간에) 미국 기독교의 핵심은 사라졌다. 핵심이 사라진 기독교는 겉으로는 예수 사랑을 내세우지만 안으로는 성소수자들이야말로 악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슬람과의 전쟁을 성전이라 선언하고 그들의 종교 행위를 혐오한다.

어떤 이는 무카페인 콜라를 마시든 껍데기만 남은 신앙을 선택하든 개인의 자유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젝이 말하듯이 "인간은 자신의 욕망에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자신의 욕망이 분노가 되어 타인의 삶을 유린하는 야만의 시대에 대한 책임을 미국 복음주의는 절대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트럼프가 집권하는 시기는 나침반을 잃은 미국 복음주의와 운동의 야성을 잃어버렸던 미국 진보신학과의 전장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야만의 시대는 시작되었고 진군의 나팔이 울리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중간에 설 수 없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문제는 오히려 한국이다. 한국은 진보신학이 이미 고사한 듯하다. 교회는 물질에 취해 시민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대형 교회에 대한 비판은 공허할 정도로 흔한 가운데, 그저 조금 더 겸손해 보이는 목회자가 대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누군가는 미래 교회의 대안이 될 진보신학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

현대 한국교회를 연구하는 한 연구자에게 들은 말이 있다.

"연구를 하고 싶어도 아무런 자료도, 선행 연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도 한국교회의 현재와 과거, 그 미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미국은 아마도 트럼프에 분연히 맞서 일어설 교회와 신학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통렬한 회개와 반성으로, 다가올 암흑기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미국을 비웃을 자격이 있을까.

한수현 / 감리교신학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Chicago Theoligical Seminary에서 바울신학으로 박사 논문을 집필 중에 있다. 미국에서 12년간 한국계 미국인 2세와 유학생 목회를 경험했으며 바울의 정치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한수현  nomos73@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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