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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말씀을 살아내는 신앙이 진짜 기독교 신앙”[인터뷰] ‘노란 우산 프로젝트' 주인공 서영석 씨

※ 1부에서 이어집니다. 

‘노란 우산 프로젝트’의 주인공 서영석 씨는 기독교인이다. 그는 “기독교인이기에 이 프로젝트를 한다”고 밝힐 정도로 확신이 강하다. 사실 한국교회, 특히 주류 보수교단 교회들은 세월호를 ‘정치적’이라며 금기시한다. 그러나 그가 다니는 교회의 분위기는 달랐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관심도 교회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그의 말이다. 

“난 목회 사역을 하고자 신학교에서 공부했는데, 그 학교가 아주 보수적인 곳이었다. 그러다 2013년 나들목교회에 나가게 됐다. 여기서 많이 흔들렸다. 그동안은 교회 안에서 봉사 잘하는 걸 신앙생활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교회는 ‘교회 안에서의 신앙은 진정한 신앙이 아니다 교회 밖에서의 삶이 진정한 신앙생활’이라고 가르쳤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내 삶의 자리 가운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노란 우산 프로젝트’ 주인공 서영석 씨 ⓒ지유석

세월호 이전까지 집회나 시위는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니 정부가 너무 무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고는 날 수 있다. 대처가 미흡했던 게 문제였다. 또 이후 사태전개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어버이날인 5월8일 수요예배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이날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이들 영정 사진을 안고 KBS 항의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와 비교해 유가족들이 반발했다. 그때 난 ‘집에 있을 게 아니라 저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마음에 여의도로 달려갔다. 유가족들은 KBS 항의방문 후 청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행진은 청운동에서 막혔고, 유가족들은 노숙을 했다. 이 광경을 보고 ‘이 분들 곁에 있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이후 그는 광화문 광장에서 피켓 시위에 나섰다. 교회에서도 피켓 시위와 함께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벌였다. 교회도 그의 활동에 힘을 실어줬다. 올해 8월 교회 수련회 때엔 노란 우산을 펼쳐들었다. 이때 노란 우산으로 만든 글씨는 ‘이웃’이었다. ‘이웃’이란 글자를 만든 사연은 이랬다. 

“노란 우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국교회에 ‘누가 우리 이웃인가?’를 외치고 싶었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그런데 왜 교회는 이웃을 찾지 않을까? 무엇보다 누가 우리의 이웃일까? 바로 가장 고통당하고, 억눌린자가 이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이웃은 세월호 미수습자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이웃을 찾아보자, 우리 이웃이 누구이고, 이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웃’이란 글씨를 만들어 보았다.”

서영석 씨가 늘 갖고 다니는 노란 우산엔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글귀가 적혀 있다. ⓒ지유석

‘안’과 ‘밖’ 구분 짓는 신앙, 이웃을 잃어버리게 한 원인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세월호를 입에 올리기 꺼려한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안산 지역 목회자들에게조차 세월호는 불편한 이슈다. 어쩌다 한국교회가 아파하는 이웃을 잃어버리게 됐을까? 서 씨는 ‘이원론적인 신앙’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한국교회는 교회 안과 밖을 구분 지어놓은 것 같다. 교회 안에서는 우리끼리 잘하면 된다. 그러나 정작 교회 울타리 밖의 생활에 대해 교회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봉사 잘하면서도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면 이율배반 아닌가?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강점은 예수님 말씀을 현장에서 살아내라는 것이다. 즉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도록 최대한 노력할 방법을 찾으라는 가르침이다.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인 박종운 변호사는 우리 교회 사회선교사 1호다. 그리고 저희 가정교회 목자는 노숙인 사역을 한다. 이렇게 현장에서 말씀을 살아내는 분들을 눈으로 본다. 난 세월호 이슈를 붙잡은 셈이다.”

서영석 씨가 1호 노란 우산을 들고 웃고 있다. 오래 쓴 탓에 1호 노란 우산은 손잡이가 빠져나가는 등 갖가지 고장이 있지만, 서 씨는 남다른 애착을 보이고 있다. ⓒ지유석

신앙심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어려움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생계다. 서 씨의 생업은 스튜디오에서 영·유아들의 사진을 찍는 일이다. 처음엔 서울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다 지난 해 말 세종시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런데 노란 우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의 작업실은 노란 우산 창고가 되다시피했다. 프로젝트 진행 때문에 자리를 비우느라 영업도 소홀히하게 됐다. 다른 한편으로, 노란 우산으로 수익사업을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곤 한다. 서 씨의 고충을 들어보자.  

“하루 종일 프로젝트 신경 쓰고,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고객들에게 불성실하게 됐다. 4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첫 3개월은 힘들었다. 그러다 8월 들어선 그럭저럭 해결됐다. 그럼에도 일부 고객의 작업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욕을 먹고 있다. 사기로 고소된 적도 있다. 그러다보니 스튜디오에 회의를 느꼈고, 의욕도 떨어졌다.

또 우산 주문의 경우 다른 곳에서는 저렴하게 받는데 왜 나만 1만원을 받냐며 장사한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저간의 사정이 있는데 외부에서는 이런 사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이를 일일이 설명해야 하니, 결국 내 영업은 못하게 된다.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할 때인가 고민한다.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활동이 낫겠다는 생각도 한다.”

서영석 씨는 매주 수요일 오전이면 세종시에 위치한 해양수산부 앞에서 ‘리멤버0416세종팀’과 함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노란 우산에 적힌 ‘우리는 아직도 4월16일입니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지유석

이에 서 씨는 지난 달 23일 포털 ‘다음’에 스토리 펀딩을 개설했다. 스토리 펀딩을 통해 모은 후원금은 프로젝트 운영에 쓸 계획이다. 또 프로젝트 사진을 모아 2017년도 탁상달력 제작도 하려한다. 그동안 진행해 왔던 프로젝트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지난 1일(토) 세월호 참사는 발생 900일을 맞이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은 요원하기만 하다.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달 30일(목) 공식 종료됐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혀줄 선체의 인양은 아직 지지부진하다. 이러다 진상규명은 또 다시 해를 넘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서 씨는 저간의 사정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한겨울에도 노란 우산 프로젝트를 하게 될 것 같다. 실제로 흰 눈이 내렸을 때 우산 펼치자는 제안이 들어 오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상황을 보니 3주기까지 갈 것 같다. 진상규명이 미진한데다 선체도 인양되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 상황에서 3주기 땐 어떤 프로젝트를 기획할지 고민이다.

노란 우산 프로젝트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기억하고 싶고 함께 우산을 들어주고 싶다면, 그 곳이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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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석  luke.wyclif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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