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시대가 열렸다.

천민자본주의의 승리?! 

그동안 천민자본주의는 한국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표현은 미국 대통령에게 붙여야 할 것 같다. ‘천박하다’는 말로 평가되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말이다. 

그가 자란 환경과 지니고 있는 가치가 이를 잘 드러낸다. 트럼프의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부동산 재벌’이다. 경영대학원(MBA)로 잘 알려진 펜실베니이아대 와튼스쿨로 진학한 것도 아버지를 따라 부동산업자가 되려는 목표가 있었던 까닭이다. 그는 “뉴욕 부동산업계의 ‘왕’이 되고 싶다”고 교수에게 말했다고 한다. 

결국 트럼프는 목표를 달성한다. 실제로 부동산 재벌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세계에 퍼진 부동산과 호텔, 골프장, 카지노 등을 기반으로 한 재산은 최소 5조 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대선 후보 재산 공개 당시 그가 주장한 재산은 12조 원에 달했다.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를 대표하는 트럼프 타워.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는 ‘자수성가’를 강조했다. 그의 아버지 프레드 트럼프 역시 미국에서 유명한 부동산 재벌이다. 1999년 사망했을 때, 개인 재산만 2억 5000만 달러로 알려졌다. 이 돈은 모두 자녀에게 상속됐다. 하지만 트럼프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보다 자신이 사업으로 축적한 재산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경제와 경영을 잘 아는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연 그럴까. 

그는 사업을 시작할 때 사용한 종잣돈은 갑부인 아버지에게 지원받은 ‘소액’이었다고도 했다. 소액은 100만 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12억 원 정도 된다. 현재 가치로도 소액으로 보기 어렵다. 과연 그가 이 돈을 빌린 것으로 추정되는 1970년대에서도 소액이라고 볼 수 있었을까. 미국 노동통계국의 소비자물가지수로 계산하면 680만 달러(77억 원)에 달한다. 

의도적 파산 신청 의혹도 꼬리표로 따라 붙는다. 트럼프는 애틀랜틱시티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면서 여러 차례 파산했다. 하지만 그의 재산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이 파산으로 한 번도 피해를 본 적이 없는 탓이다. 피해는 오로지 하청업체와 동업자,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애틀랜타시티에 있던 트럼프의 카지노
애틀란타시티에 있던 트럼프의 카지노가 파산해 문을 닫았을 때, 그의 횡포를 강력하게 지적하며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

의혹은 대선 후보들이 통상적으로 했던 납세 내역 공개도 회피로 커졌다. 무엇을 숨기는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했다. 그가 신비주의 전략으로 사용한 막대한 재산이 실제로는 없는 것 아닌가, 빚이 많은가, 세율이 낮은가, 기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조세 도피처를 이용하고 있나, 여러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결국 이러한 의혹은 당선인이 되면서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회사를 쪼개어서 경영 상태가 좋지 않으면 쉽게 날려 버리는 구조를 만드는 게 다반사인 현재 기업 체제가 드러났을 뿐이다. 이들에게 파산은 손해가 아닌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경제 지표는 나빠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아지고, 경제가 살아났다.”

이러한 경영으로 부를 축적해 왔다면, 미국 경제는 곧 여러 지표도 악화할지 모른다. 소비가 있어야 돌아가는 산업구조와 빚도 재산이 될 수 있는 경제 구조가 같을 수 없는 탓이다. 

다양성 대변하는 정치의 필요성

미국에 사는 한 한인은 페이스북에 이러한 글을 올렸다. 

“늙은 여우와 난봉꾼의 싸움에서 누가 이겼다는 사실보다 길을 걸어가다 마주칠 피부가 하얀 그 친구가 내게 웃으며 인사하지만, ‘사실 난 널 싫어해’라고 생각할 속마음을 알게 된 게 오늘 날씨만큼이나 XX 같다.” 

여러 매체에서 분석하듯 이번 대선 승리는 미국인들이 가진 인종차별과 여성혐오를 대변한다. 부동층, 남몰래 트럼프를 지지한 ‘샤이 트럼프’를 투표장으로 이끈 원동력이 여기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7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전 8년은 ‘흑인' 대통령 오바마를 보아야 했다. 그런 백인 남성들이 이번에 ‘여성’ 대통령이 ‘보스’가 되는 걸 지켜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나라를 몰랐다'고 지적한 폴 크루그먼 교수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뉴욕시립대학교 폴 크루그먼 교수도 <뉴욕타임스>에 ‘우리가 우리나라를 몰랐다'는 논조의 글을 기고했다. 인종차별과 여성혐오가 없는 사회라고 못하지만, 상식과 민주적 가치,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믿었던 실수를 인정했다. 미국은 결국 여기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탄식이 나오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대선이 둘 중 하나, 총선도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투표인 탓이다. 거기에 전체 표결의 숫자와 다르게 드러날 수 있는 선거인단 독점 체제도 문제다. 민의와 다른 방향의 결과가 나타나는 투표 체제가 문제를 드러냈다. 힐러리가 더 많은 표를 얻은 것이다. 

미국은 너무 오랫동안 민주당과 공화당이 국회 의석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로 지냈다. 임기 6년의 상원은 2년마다 1/3만 투표로 결정된다. 하원은 2년마다 한 번씩 전체가 투표로 선출된다. 여기에 다양성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저 민주당 아니면 공화당이다. 

거대한 두 정당만으로는 다양한 인종과 민의를 대변하기 어렵다.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력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시대와 민의는 계속 변하는데, 제도가 이를 따라오지 못한다. 버니 샌더스의 열풍이 이를 드러낸다. 그리고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 같은 다양성과 진보를 담보로 한 여성 대선 주자가 이를 대변한다. 그동안 미국 여성 대선 후보로 출마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질이 이어갔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기후협약 이행, ‘경고등’

돈이 최고라는 천민자본주의, 다양성의 부재와 함께 트럼프의 승리가 가져올 악영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환경 분야에서 더 크게 나타날지 모른다. 그는 지난해 겨울, 유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구온난화? 난 지금 너무 춥다. 온난화가 대체 어디서 나타난다는 말인가.”

지구온난화는 없다고 밝힌 트럼프의 공식 트위터 계정

대선 공약으로 이런 말도 했다.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값싼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하겠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지구온난화를 부정하고 나선 인사다. 그리고 이번에 연방의회 상하원을 모두 차지한 공화당 역시 지구온난화를 부정한다. 이는 트럼프를 반대했던 언론들도 다르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이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탓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실제 재생에너지 정책보다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구조다. 세계적인 석유회사들이 강력한 로비를 벌이면서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셰일 오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상황에서 세계적 미국 석유 회사들이 오일 샌드(타르 샌드)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환경단체들이 ‘더러운 석유’라고 명명한 ‘타르 샌드’는 끈끈한 액체 형태의 원유가 모래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원유 대체자원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채굴과 정제 과정에서 오염 물질을 너무 많이 배출한다. 실제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일반 연로에 23%에 이른다. 

오일샌드는 너무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한다.

오바바 정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중국과 협상을 벌여 감축에 합의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세계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협정’이 이뤄졌다. 온실가스를 90%를 배출하는 나라가 모두 협약에 서명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목표량은 28%가량 감소로 두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파리기후협정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기후 협약 프로그램 지원금을 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이 협정은 이미 발효한 상태다. 협정한 나라들은 3년간 탈퇴할 수 없고, 탈퇴 의사를 밝혀도 1년간 공지 기간을 두어야 한다. 4년 임기인 미국 대통령 재임 기간 트럼프는 파리기후협정에서 빠질 수는 없다. 

다만, 이로 인해 협정은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미국이 협정을 주도한 탓이다. 중국은 물론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인도네시아도 미국의 약속 때문에 동참했다. 미국이 빠지면, 이들도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195개국 세계 정상이 모여 협약한 파리기후협정 실행에 경고등이 켜졌다.

한미, 남북 관계의 변화?

트럼프의 당선으로 세계 질서는 새로운 변화 시기를 맞았다. 아니, 변화의 가능성 정도로만 볼 수도 있다. 트럼프가 공언한 것처럼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고, 자국 중심으로 돌아선다면 지금 같은 제국주의 노선을 취할 수 없다. 달러의 약세로 이어질 것이고, 세계 경제와 세력 경쟁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한국은 이 변화의 시기를 잘 준비해 가야 한다. 전략과 계획, 분석과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경제와 국제 관계만을 말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분단, 북핵 등으로 이야기되는 반평화적 요소와 더 관련이 깊다.

평화학의 석학이자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갈퉁 교수는 트럼프 당선이 한국에는 평화의 기회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주한미국 철수를 주장해 왔고, 이는 곧 “한국에게 최대의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바꾸어야 가야 한다고 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전제로 했으니 어떤 결론으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한반도 평화협정은 세계적 요구이기도 하다. 평화를 위한 시민단체 위민크로스 DMZ의 휴전선 방문.

말만 아닌 실제 평화를 위한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공약을 이뤄내도록 움직여야 한다. 보수 세력이 강조하는 인계철선은 이미 폐기된 정책이다. 미국은 강력한 태평양함대와 괌 등에 주둔한 공군으로 북한과 전쟁할 전략으로 바꾸었다. 결국 한반도 평화가 미국의 경제 효율에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강력하게 주장한 공약이었다. 미군이 내어주려는 전시작전권도 회수할 필요가 있다. 

갈퉁 교수는 미국이 프로파간다로 사용하는 ‘신뢰'를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을 사용하면 그 어느 시기보다 많은 전쟁을 일으킨 것이 미국 정부였다. 결국은 평화를 구축하려는 실제적 노력, 정책, 결과가 더 중요하다. 스위스처럼 방어를 위한 전투력은 필요하다. 전쟁 위협을 줄이기 위한 도구로 평화 정책을 계속해서 증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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