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ThisIs2016 

현재 미국 소셜미디어 상에서 유행하는 해쉬태그다. 해쉬태그란 소셜미디어에 게시물을 올릴 때 키워드 앞에 ‘#’를 붙이면 해당 키워드와 관련된 다른 게시글을 다 볼 수 있는 기능이다. 

이 해쉬태그는 어느 중국계 미국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이 미국인은 어느 날 가족과 산책을 하다가 어느 백인 여성으로부터 ‘빌어먹을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욕설을 들었다. 욕설을 들은 이 중국계 미국인은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중국계 부모를 뒀을 뿐 미국에서 나고 자란 자신에게 이런 욕설은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이 중국계 미국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지금은 2016년이다’는 뜻의 해쉬태그 ‘#ThisIs2016’을 달아 자신의 경험을 적었다. 

이 중국계 미국인의 이름은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지 에디터 마이클 루오였다. 이 해쉬태그는 뜻밖의 반향을 일으켰다. 백인이 아닌, 특히 한국을 비롯한 동양계 미국인들이 자신이 차별 당한 경험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ThisIs2016’은 2016년, 흑인이 대통령에 오르는 등 미국 사회의 인종지도가 백인 중심에서 다인종으로 옮겨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비백인계에 차별이 만연한, 또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공공연히 중국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인 뉴욕타임스지 에디터 마이클 루오는 #ThisIs2016란 해쉬태그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마이클 루오 트위터 화면 갈무리

이성·합리성은 간데없고 예지몽이 판치는 대한민국 

한국의 2016년은 어떤가? 지금 나라가 ‘최순실’이라는 정체불명의 여성 때문에 난리도 아니다. ‘JTBC뉴스룸’, ‘TV조선’ 등 언론을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불거져 나오는 최순실 관련 의혹들은 차라리 드라마 같다. 아니, 드라마였으면 좋겠다. 이런 의문이 든다. 대통령이 보기에 대한민국에 인재가 그리도 없었던가? 그래서 단지 개인적인 친분 말고는 아무 공적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최순실에게 국가 중대사를 맡겼던가? 

최순실의 입에서 나온 말은 더욱 경악스럽다. <세계일보>는 27일(목) 최순실 인터뷰 기사를 단독으로 내보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어떻게 수정했냐는 질문에 최순실의 대답은 이랬다.

“대선 당시인지 그 전인가 했다. 대통령을 오래 봐 왔으니 심정 표현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드리게 됐다. (박 대통령의) 마음을 잘 아니까 심경 고백에 대해 도움을 줬다. 그게 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가기밀인지도 몰랐다.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았다면 손이나 댔겠느냐.”

대통령 연설문이 국가기밀인지도 몰랐단다. 어이없다. 이 말을 그대로 풀이하면, 대통령은 국가기밀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국가기밀인 연설문을 넘긴 것이다. 

최순실이 개성공단 폐쇄에 개입했다는 <한겨레신문> 보도는 경악을 넘어 허탈감을 자아내게 한다. 이 신문 보도 내용 중 일부다.

“최씨를 자주 만났던 한 지인은 ‘개성공단이 폐쇄될 무렵 최순실씨가 ‘앞으로 2년 안에 통일이 된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최순실은 지난 1994년 타계한 고 최태민 목사의 다섯 째 딸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 목사는 그가 예지몽 능력이 뛰어나 총애했다고 한다. 통일대박, 개성공단 폐쇄 등 대통령이 내놓은 대북 관련 정책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정책이었다. 그래서 이 같은 정책이 나오자 사려깊지 못한 접근에 아쉬움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들 정책들이 최순실의 예지몽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할 말을 잃는다. 앞서 적었지만, 이 일이 차라리 드라마였으면 좋겠다. 

1979년 6월 10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제1회 새마음 제전’이라는 행사에 나란히 등장한 박근혜 현 대통령과 최순실.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비선실세 파문으로 드러난 한국교회의 저급함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교회의 저급함과 위선을 본다. 38개 교단 연합체로 ‘한국교회의 입’을 자처하며 보수 기독교계의 입장을 대변해온 한국교회언론회(아래 언론회)는 정부가 지난 2월 개성공단 폐쇄를 단행하자 쌍수 들어 환영했다. 

“우리 정부는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발표하였다. 북한이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데, 드는 비용의 일부를 개성공단을 통해 조달하는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현재 개성공단에는 54000여 명의 북한 근로자가 있고, 우리나라 기업은 124개가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개성 공단을 통해 북한 당국에 유입되는 금액은 연간 1억 달러(한화 약 12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 12년간 이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유입된 금액은 대략 6000억 원 정도가 된다고 정부가 발표하였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을 발사하는데 드는 비용이 회당 3000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에 상당히 많은 금액이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갔을 것은 명약관화하다.”

결국 언론회는 최순실의 예지몽에 따라 결정된 개성공단 폐쇄를 환영했으니, 결과적으로 사이비 종교와 맞장구 친 셈이 됐다. 그런 언론회가 고 최태민 목사에 대해서는 “기독교 ‘성직’이 세간에 오르내리는 것은, 저간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다”며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참으로 이중적이고 기회주의적이다. 이 나라의 기독교가 이 정도 수준이었던가? 

이 나라 기독교의 수준은 보수교회 연합체인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의 논평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난다. 한교연은 대통령의 사과 기자회견 이후 낸 논평에서 국정 공백을 우려했다.

“지금 탄핵 운운하는 성난 민심을 헤아리지 못할 바는 아니나 국가적 위기 앞에서 통치권의 공백은 더 큰 위기를 자초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통치권 공백? 약 3년 8개월의 임기 동안 통치권은 사실상 공백상태였다.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를 무시하고, 비선실세인 최순실에게 민감한 국정현안을 맡겼으니 이게 국정공백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최순실은 대통령의 공식 SNS계정에 올릴 사진이나 외국 순방 때 입을 의상마쳐 챙겼으니, 소소한 일까지 비선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통령에게 어찌 국가중대사를 맡길 수 있을까? 

그러니 한교연은 국정공백을 걱정하기보다, 박 대통령 임기 동안 공백이나 다름없었던 이 나라의 통치질서를 회복시킬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맞다. 기독교계, 특히 보수 기독교계는 국정공백을 걱정하기보다, 국민의 아픔은 외면한 채 권력에 빌붙은 데 대해 한국교회와 성도 앞에 크게 회개해야 한다. 

지금은 2016년이다.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사실과 추론이 형이상학과 종교적 교의를 몰아낸 시대를 산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과연 우리가 2016년에 살고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비단 최순실 비선실세 의혹만 아니다. 목회자가 여성도와 불륜을 저질러 아이를 가졌음에도 성령의 열매라고 발뺌하는가 하면, 비선실세의 딸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명문사학이 아예 규칙을 바꿔 버린다. 이 모든 일들이 2016년에 벌어졌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지금은 2016년인가? 아무래도 우리는 이런 해쉬태그를 달아야겠다.  

#지금은201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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