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올랜도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테러를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지난 6월 12일 새벽 미국 올랜도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오마르 마틴'이라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이 플로리다 올랜도 시에 있는 펄스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해서 49명이 숨지고 53명이 중경상을 입힌 참사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은 9.11 테러 이후 최대 규모의 테러, 최악의 총기 난사사건 등으로 불리면서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참사 직후 가장 먼저 재빠르게 움직인 곳은 올해 말 대선을 앞둔 미국의 양당 대선후보들이었다. 이 참사가 이후 선거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분석하고 사건에 대한 논쟁을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경쟁에 나선 것이다. 

번지수 잘못 찾은 트럼프와 미국 언론

먼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했다. 올랜도 테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소행인데 그 용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인 마틴의 부모가 애초에 미국 이민을 올 수 없었더라면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무슬림 이민금지 정책의 타당성을 역설했다.

따라서 트럼프는 이 참사가 미국을 위협하는 급진적 이슬람 테러이즘으로 인한 것임을 계속 선전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해 테러공격 사례가 있는 모든 나라로부터의 이민 금지', '미국 내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감시 강화' 정책들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조심스럽게 총기 규제의 필요성에 초점을 뒀다. 클린턴 후보는 "전쟁무기가 거리에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며 살상무기에 대한 규제를 강조했다. 올랜도 테러 등에서 AR-15 소총과 같은 살상무기가 사용됐다는 점을 거론하며 총기규제에 대한 강화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같은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 역시, 6월 16일 올랜도 참사 유가족들과의 만남에서 임기 내 가장 큰 실패 중의 하나로 총기규제 법률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밝히며, 새로운 총기규제법률이 조속히 통과될 것을 촉구하였다. 

참사가 발생한 다음 주에 진행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 의하면 공화당 당원의 과반을 포함해 70%의 미국인이 최소한의 온건한 총기 규제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과 2014년에 진행된 관련 조사와 비교하면 10%가량 증가한 숫자이다. 그런데도 총기규제법안은 결국 미국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모두 부결되었다.

현실적으로 매년 막대한 정치 기부금을 지급하는 전미 총포협회(NRA)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고 올해 말 대선에서도 총기규제는 최대의 쟁점이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살펴볼 점은 대부분의 언론 역시 이 사건의 주요 동기로 테러이즘과 극단적 이슬람을 지목했다는 사실이다. 마틴이 IS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이후에도, 이 사건이 9.11 테러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가치와 안보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공격인양 보도하는 언론의 프레임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문제는 미국 내부에

반면 이번 참사의 최대 피해자인 유색인 성소수자집단은 주요언론의 "외부로부터의 테러행위" 프레임을 비판하고 사건의 국내적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참사가 미국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구조적 인종주의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주의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인 오마르 마틴의 아버지 증언에 따르면 마틴은 몇 달 전에 남자 동성애자 둘이 공공장소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무척 분노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사건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테러이자 증오 행위"라고 했던 것은 동성애 혐오 정서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FBI의 조사에 따르면 증오 범죄의 20% 이상은 성소수자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더불어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라 인종차별로 인한 구조적 폭력도 만연하다. 특히 미국 내 인종차별적 폭력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경찰의 공권력으로 인한 유색인종의 사망사건이다. 2014년 8월 중순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십대 흑인 청년이 백인 경관이 쏜 총에 죽은 사건이 촉발시킨 흑인 차별 반대 시위와 집회는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으로 미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마틴 역시 SNS상에 뉴욕경찰 복장을 입고 찍은 사진을 올리고 경찰이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미국 경찰의 인종주의와 폭력성에서 그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구조적인 인종주의와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일어난 범죄에 맞서기 위한 미국 내에서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최근 미국 무슬림 커뮤니티와 LGBT(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올랜도 총기 참사를 계기로 손잡고 사회적 편견과 증오 범죄에 공동 대처하기로 했다.

미국 내 최대 무슬림 이익단체인 '미국 이슬람관계협의회'(CAIR)와 미국 최대 LGBT 법률조직 '램다 리갈'(Lambda Legal), '이퀄리티 일리노이'(Equality Illinois) 등은 시카고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무슬림과 LGBT의 평등한 인권 보장을 위해 연대하기로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중국의 성 소수자(LGBT) 인권 옹호단체 190여 곳이 사건 직후 연대 성명을 발표해 미국 올랜도에서 발생한 총기 테러 사건을 규탄하면서 자국 내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를 호소하고 나섰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클럽 총격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13일 오후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 경의선숲길공원에서 '미국 올랜도 성소수자(LGBT)클럽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권우성

그렇다면 이번 올랜도 총기난사 사건에서 한국사회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한국에서도 역시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성소수자단체들이었다. 올랜도 참사가 일어난 직후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촛불 문화제를 연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를 비롯한 성소수자단체들은 이번 사건이 미국사회에 내재된 구조화된 인종주의와 성소수자 혐오주의에서 기인하였다고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서 올랜도 참사와 같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얼마나 되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도 이주민, 성소수자에 대한 일상적 폭력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에서 가장 밑바닥을 책임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날마다 당하고 있는 폭행, 폭언, 임금체불, 성추행 등과 같은 일상적 폭력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수많은 성소수자들 역시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단절을 두려워하여 스스로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올랜도 참사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주민,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일상적, 제도적인 혐오 폭력에 맞서 함께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더욱 강하며 혐오와 폭력은 평등과 인권의 가치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올랜도 참사에서 배워야 할 진정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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