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3세 여성이 조현병 병력을 지닌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여성혐오와 정신질환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용의자로 체포된 34세 남성은 과거에 여성들이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말했으며, 용의자와 피해 여성은 사건 발생 전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사이였습니다. 경찰은 용의자에게 정신병력이 있는 만큼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구분 지어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정신과 전문의인 서천석 박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정신질환이 환자가 속해있는 사회정치적 환경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며, 권위주의 정권이 통치하던 1960년대에 국가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 편집증 환자가 많았던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용의자의 여성혐오적 언사가 망상 때문이었다 해도 그러한 망상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으며, 여성혐오 현상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런 망상 대신 다른 망상을 가졌을 것이라는 지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정신질환은 오랫동안 터부시되는 주제였고, 정신병력을 낙인처럼 여기는 사회 분위기 역시 여전합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5.6%(약 200만 명)가 살면서 최소한 한 번은 우울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작년 기준, 우울증 치료를 받은 사람은 29만 명에 지나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는 사람은 15만 명에 그쳤습니다.

한국인들이 정신과 치료를 꺼리는 경향과 상관없이, 정신질환과 폭력 범죄 간에는 큰 연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14년 미국심리학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죄자 143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정신질환의 증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범행은 7.5%에 불과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서천석 박사 역시 정신병을 가진 사람의 범죄율이 정신병이 없는 사람에 비해 낮다고 언급했습니다.

반면, 국회의원에 당선된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박사는 용의자의 정신병력 때문에 이번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분류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김광진 국회의원은 “여성만이 아닌 모든 약자”에 대한 범죄를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금요일, 추모 현장을 방문한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또한 경찰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특정 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로 단정 짓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이 같은 논쟁은 한국에 살면서 성차별과 젠더 폭력을 수차례 목격했다는 외국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2015년 1월부터 8월 사이 신고된 폭력 범죄의 피해자 가운데 87%가 여성입니다.

“여러 가지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은데, 경찰이 ‘정신질환 때문에 그런 거다’라고 말해버리니 불쾌하네요. 정신질환을 탓하는 건 쉽지만, 사람이 정신병 때문에 여성혐오자가 되는 건 아니죠.”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29세 미국인 여성의 말입니다. 이 여성은 이번 사건을 미국에서 일어난 일부 총기 난사 사건들과 비교하면서, 총기 사건에서도 범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범행의 동기가 된 다른 요인들을 무시하고 정신병력을 크게 과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범행을 유발한 사회, 문화적 문제를 거론하는 어려운 길 대신 정신병력이라는 손쉬운 설명을 택하고 넘어가려는 경향이 비슷하다며, 이번 사건에서도 한국 사회의 양성 간 격차라는 심각한 문제를 마주하는 대신 범인의 정신질환을 앞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코리아헤럴드)

본지 제휴 <News Peppermint>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미주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