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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만 말아다오

고향의 어린시절 여름이면 개돼지를 잡는 마을행사가 있었다. 복(伏)날이 되면 대추나무 아래서 개를 잡았다. 개 주인이 줄에 매인 누렁이를 끌고 왔다. 시골영감들은 잔치가 있는 먼 길을 갈 때 면 호위무사처럼 개를 끌고 다녔다. 주인이 먹다 남은 고기조각을 던져주면 맛있게 받아먹었다.

누렁이는 잔치집에 가는줄 알고 꼬리를 흔들면서 따라나섰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건 참나무 몽둥이었다. 개백정이 개 줄을 넘겨받아 대추나무가지에 매달고 몽둥이로 내려쳤다. 깜짝 놀란 개가 소리를 지르며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줄이 끊어졌다. 개는 피를 흘리며 주인에게로 기어와 살려달라고 끙끙거렸다. 그러나 개백정은 더 굵은 밧줄로 개를 묶어 매달고 참나무 몽둥이로 사정없이 패댔다. 똥을 질질 싸면서 애처롭게 울어대던 개는 눈에 파란불을 키고 이를 갈더니 컹! 소리를 내고 죽었다. 사람들은 개털을 불에 태운후 배를 갈라 개고기를 나눠가졌다. 끔찍했다.

돼지 잡는 건 더했다. 추석전날에 돼지를 잡았다. 동내서 제일큰놈을 끌고 왔다. 다리를 꽁꽁묶어 꼼짝 못하게 해놓은 후 돼지백정이 칼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 장비의 장팔사모처럼 날이 시퍼런 칼날을 돼지 목 깊숙히 푹 찔러 넣었다.

“꿰애액 꿱-깩”

칼을 맞고 죽어가면서 질러대는 돼지 목따는 소리가 마을을 흔들어놓았다. 붉은 돼지 피가 파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남자들이 달려들어 사발로 받아 마셨다. 꼬맹이들은 돼지 오줌통에 바람을 넣고 축구공을 만들어 신나게 축구를 했다.

무서웠다. 돼지고기 요리로 저녁상을 즐기는 아버지에게 나는 따져 물었다.

“가축도 주인음식 찌꺼기를 먹으니 같은 식구인데 왜 그리 잔인하게 죽이나요?”

“죽을때 고통 아픔 슬픔 원망을 당하면서 죽은 가축고기는 달고 졸깃졸깃 맛있게 마련이란다. 쉽고 편하게 죽은 놈은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지. 그래서 두들겨 패고 칼로 목을 따서 고통스럽게 죽이는거야. 춘하추동 4계절속에서 자라난 한국산 농산물이 맛있는 이유처럼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부하고 편하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 즐거움을 모른다.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주셨단다”

그래도 너무하다. 오죽하면 “개패듯 한다”와 “돼지 멱따는 소리”란 말이 생겼을까?

그날이후 나는 개고기 돼지고기를 못 먹는 소년이 됐다. 나는 지금도 육식은 물론 칼로 배를 째는 생선요리를 먹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인간의 죽음이 개죽음보다 끔찍한걸 알고 놀랐다. 개돼지는 10분동안 몽둥이를 얻어맞거나 칼로 목을 따는 고통을 당하고 나면 깨끗이 죽는다. 그러나 인간은 고생고생 해야 죽는다. 수만명 모이는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H목사는 7번이나 간암수술을 하고 매주 4번씩이나 투석을 하다가 갔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이보다 더 비참한 죽음이 있다. 자살이다.

부산에서 33살 젊은 의사가 생후 4개월 된 딸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딸의 코와 입을 막아 숨지게 한 뒤 자신의 몸에 주사기로 약물을 투여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개월 전 낳은 쌍둥이 딸 중 한 명이 미숙아로 태어난 점을 비관해 오다가 그랬다. 아깝다. 33살 젊은 나이에. 그 좋은 의사직업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가다니? 젊은 아내와 4달 짜리 딸은 어찌 살라고!

나폴레옹이 7번이나 읽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옛날에는 아무나 자살하지 않았다. 자살은 예술이요 철학이었다. 나폴레옹은 괴테의 자살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일곱 번이나 읽고 가슴에 품고 다녔다. “사(死)의 찬미“를 부르고 현해탄에 몸을 던진 윤심덕은 한국최초의 마돈나였다. 지금은 아무나 자살 한다. 자살특공대 알카에다의 등장이후 자살은 무기가 돼버렸다.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으로 자살하는 경우는 자살이 아니라 병사(病死)다. 한국은 매일 38명이 자살한다. 우리부부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주문은 단순했다.

“일류대학을 나와 입신양명 출세를 바라지 않는다.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건강만 하면 어떻게 던지 먹고살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더 단순해졌다.“제발 자살만 하지 말아다오. 자식이 살아있는 것 만큼 부모에게 큰 효도는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죽지 말고 살아야한다. 피투성이라도 살아야한다”

나는 삼남매에게 에스겔 16장을 설교한다. 에스겔이 걷고 있는데 길가에 어린애가 피투성이가 된 채 울부짓고 있었다(겔16:6). 부모 잘못만나 미아로 죽는구나 했는데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는 하늘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파킨슨병 3년차다. 잠을 자도 피곤하다. 머리와 다리가 무거워 생각하기도 꼼짝하기도 싫다. 집을 나서면 10분동안 가슴에 통증이 온다. 허리와 어깨가 아프다. 변비로 고생이다. 염세주의자인 난 딱 걸렸다. 나는 죽고 싶다. 그러나 애비보다도 심약한 둘째딸을 보면 나는 강해져야 한다.

“난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한다”

피투성이라도 살려고 몸부림친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바닷가를 걷는다. 주 2회 테라피를 받는다. 한시간걸어서 미국교회로 나간다. 모두 걸어다니는 데 교회가기가 제일 힘들다. 집을 나서면 10분 동안 가슴에 통증이 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바닷바람에 우산이 부러져 고스란히 겨울비를 맞는다. 그래도 교회카페테리아에서 불랙커피와 쿠키를 들고 10분동안 교회뒤뜰을 거니는 게 좋았다. 그런데 언제부터 힘들어 중간에 던킨집에 들려 기운을 차려야 했다.

피투성이라도 살자. 그래도 나는 계속 걸어 다닌다. 의사가 처방하는 약 말고 몸에 좋다는 식용을 닥치는대로 먹는다. 매일 코코넛오일을 두 숫갈씩 먹는다. 매일 토종꿀 커피두잔. 조석으로 홍삼원골드를 마신다. 이상하여라.

일년동안 괴롭혀오던 가슴통증이 열흘전에 사라졌다. 변비가 삼십육계 줄행랑. 천근처럼 찍어누르던 오전피곤도 한결 가벼워졌다. 교회 가기전에 집에서 미리 꿀커피를 마셨더니 2시간 영어예배도 쌩쌩하다.

‘아하, 피곤할 때 커피를 마시지 말고 피곤하기 전에 미리 마셔두는 거라구나!

전에는 하루가 천년이더니 요즘은 천년이 하루다. 행복탈환!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피투성이라도 몸부림치다 보면 위에계신 분이 오셔서 물로 씻기고 비단옷을 입혀 열국의 공주로 높혀 주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처럼.

이계선  6285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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