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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예수상, 링컨 그리고 노무현
   
▲ 흑마와 백마가 끄는 마차는 이 영화가 어떤 영화인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남북 전쟁 직후 와이오밍의 눈 내리는 산골에서 승객을 실은 마차와 시체를 끄는 북군 전역장교 워렌(사무엘 L. 잭슨)이 마주쳤다. 현상금 사냥꾼으로 활동하는 워렌은 현상금이 걸려 있는 시체 몇 구를 이송하다가 늙은 말을 잃고 어렵게 산길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마차에는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가 10,000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여성 죄수를 호송하고 있다. 여성 죄수 한 명의 ‘가격’은 워렌이 지난 ‘여러 개의  상품’보다 훨씬 비싸다. 고가의 상품을 무사히 넘길 수 있는 레드 록까지 죄수를 호송해야 하는 존 루스에게 모든 사람은 자신의 물건을 탐내는 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영화 <헤이트풀8>(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2015년) 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행히 존 루스와 워렌은 구면, 그들은 마차에 탑승해 레드 록으로 가던 중 자신이 레드 록에 부임하는 젊은 보안관이라고 주장하는 크리스가 합승을 요청한다. 마부 OB를 포함해 모두 다섯 명은 레드 록 가는 길목에 있는 미니의 가게에서 눈보라가 그칠 때까지 쉬어가기로 한다. 워렌 일행이 도착했을 때 이곳에는 다른 무리들이 있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남군 장군 샌드포드 스미더스, 미니를 대신해서 가게를 지키고 있던 밥, 교수형 집행인 오스왈도,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이라는 조 이렇게 9명이 가게 안에서 눈이 그칠 때까지 함께 보내기로 한다.

서로가 인사를 나누지만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이 분위기는 워렌이 가장 먼저 감지했다. 주인 미니가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과 그 동안 일을 봐주고 있다는 멕시칸 밥에게서 워렌은 수상한 점을 발견한다. 존루스 역시 호송하는 죄인 도머그를 풀어 주려는 세력이  8명 중에 숨어 있다고 의심한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좁은 공간에서의 위장된 평화는 당연히 오래가지 못할 터. 먼저 샌드포드 장군과 워렌이  맞붙는다. 두 사람은 남북 전쟁 당시 배턴 루지 전투 이야기를 하면서 남군과 북군의 정당성을 늘어 놓는다. 이 과정에서 샌드포드의 아들로 이야기가 옮겨가자  둘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고 먼저 총을 뽑은 샌드포드는 워렌의 총에 목숨을 거둔다.

워렌 일행이 미니의 가게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에 있었던 3명은 도머그와 한 패인 강도들이었다고 영화는 상세히 설명한다.  도머그를 구하기 위해 가게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인 후 추위를 피하는 손님으로 위장해서 존루스와 도머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 손님으로 와 있던 샌드포드 장군은 살육의 현장을 목격했지만 비굴하게 입을 다문다. 워렌과의 말싸움에서는 남군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던 그였지만 강도들 앞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비굴하게  구걸했다.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감탄이 나오는 영화 

1) 왜 8명이지?

미니의 가게에는 모두 9명이 있었다. 마루 밑에 숨어 있던 갱단의 두목인 도머그의 오빠를 포함하면 모두 10명이다. 그러마 영화 제목은 ‘증오에 찬 8명’이다. 도머그 오빠는 영화 후반에 등장하니 그렇다고 쳐도 누군가 한 명은 영화제목에서 빠져야 한다. 도머그가 여자기 때문에? 그나마 가질 분노라고는 없는 마부 OB? 도머그가 빠지는 것이 감독의 의도처럼 보인다. 나머지는 각기 삶에서 흑인이기 때문에 가지는 증오, 흑인을 향한 증오, 세상을 향한 증오를 간직한 채 살아가지만 어쨌든 악인을 잡아 돈을 벌든지 갱단 동료를 구해내던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도머그와 오빠는 증오를 유발했다.

   
▲ 영화 제목 '헤이트풀8'은 ‘증오에 찬 8명’이다.

 2) 눈 덮인 예수상

영화 처음과 끝에 눈 덮인 예수상이 나온다. 인적도 드문 산길의 예수상, 그리고 눈이 덮여 꽁꽁 얼은 예수상은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기독교를 상징한다.

 3)  부서진 문과 화장실로 가는 표식

아침에 미니의 가게를 점거했던 도머그 갱단의 일당은 총질을 하다가 문고리를 부수어 버렸다. 안에서는 나무에 못을 박아 문을 닫고 밖에서 들어 오려면 발로 차서 못을 빼야 한다. 총질로 부서진 문은 못질과 발길질에 의해서 닫히고 열린다. 가게 안의 사람들은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곳에는 어두운 밤에 갈 사람들을 대비해 긴 줄로 표식을 해 놓았다.

미니의 가게는 미국을 묘사한다.  흑백 갈등, 남미계 이민자들과의 갈등, 각종 범죄 등이 미국 사회의 단면인데 영화는 그 모든 것을 좁은 가게 안에서 보여준다. 가게로 통하는 문은 부서진, 즉 닫힌 문으로 폭력으로만 열고 닫히는 문이다. 미국은 세상에 모두 개입하고 싶어 하지만 오히려 닫힌 사회다. 닫힌 사회와 유일하게 연결된 공간은 배설의 공간 화장실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이 비단 미국사회뿐이겠는가? 미국이 아니어도 자본주의 사회는 모두 미니의 가게 같다. 다양한 증오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버렸다. 나누어 먹어야 할 몫의 90%는 극소수 계층이 독점했다. 나머지 10%를 놓고 싸우는 사람들은 90% 소유자를 향해 싸움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10%를 서로 빼앗으려고 싸운다. 이런 사회 구조에서 미니의 가게를 본래 지키던 순박한 사람들은 폭력에 희생된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워렌이 상대적으로 선한 존재로 보이지만 그 역시 존 루스와 다름 없이 사람을 상품으로 생각해서 돈을 버는 존재다.

4) 링컨의 편지

워렌은 북국 장교로 근무 당시 링컨 대통령으로부터 받았다는 편지를 항상 소지하고 다닌다. 설원에서 존루스와 처음 만났을 때도 그 편지를 읽어 주었다. 흑인 워렌의 말처럼 링컨의 편지는 백인을 비무장 시키는 힘이 있다. 심지어는 남북 전쟁 당시 남부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조차 ‘링컨의 편지’라는 권위를 존중한다. 하지만 미니의 가게에 모인 이들은 유일한 흑인인 워렌이 링컨의 편지를 갖고 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크리스가 앞장 서서 워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가게 안의 사람들에게 동조를 구한다. 이 때 워렌은 편지는 가짜 라고 실토한다.

5)  마지막 남은 두 사람

살육극이 벌어 진 뒤 가게 안에는 중상을 입은 크리스와 워렌만이 남는다. 이들도 중상을 입어 죽어가는데 남부출신으로 링컨의 편지가 가짜라고 몰아 부치던 크리스가 워렌에게 편지를 달라며 읽어 내려간다. 크리스는 마지막 힘을 다해 편지를 읽고 익숙한 구절이 나오면 워렌은 그것을 중얼거리며 따라 한다.

“세상은 계속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바뀌어 가고 있어. 당신(워렌)은 흑인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함께 그 길을 걸어 목적지에 도착합시다.”

6) 링컨의 편지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편지라는 대상너머에 있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편지를 수단 삼아 가게 안에서 반나절 사이에 일어난 대립을 극복한다. 남군과 북군은 죽어가면서 도머그를 함께 응징하고 링컨의 편지를 유언 삼는다. 모든 게 끝난 것 같지만 세상은 여전히 조금씩의 변화를  향해 나갈 것이라는 링컨의 진리(진짜와 가짜라는 대립을 초월한)와 이들은 결별하지만  다음 세상에서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고 진리를 위해서라면 라캉의 용어처럼 ‘죽음 충동’을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충동 너머로 얼핏 보이는 진리가 두렵다고 외면할 수는 없다.

링컨의 편지가 가짜이든 진짜이든 링컨의 흑인 노예 해방이 정략이었든 소신이었든 중요하지 않다. 편지의 내용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 헤이트풀 8'의 오프닝 크레딧에 사용된 예수상.

한국은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요동치고 있다. 수구세력에 대해서는 말할 가치 조차 못 느끼니 접어 두기로 하고 진보세력에서 조차 ‘노무현’이 금기어가 되고 있다. 국민의 35%가 노무현을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하는데 그를 버리고 가는 것이 전략상으로라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워렌이 링컨의 편지를 품속에 지니고 다니듯이 노무현의 연설과 사진은 지금도 SNS에서 인기 공유 대상인데 그로 인해 어떤 정치인은 정치 생명을 마감하고 어떤 이들은 ‘노빠’라는 경멸을 받는다.

그의 연설이 자신의 정치 철학을 담은  진짜였는지 정치적 수사로 가득 찬 가짜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연설은 다시 시작하자고 우리를 선동한다. 지금은 다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영화 <헤이트 풀 8>에서는 모두가 죽었지만 아직 우리는 그 정도 상황은 아니다. 가게의 닫힌 문처럼 앞뒤가 꽉 막혀 보이지만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라면 워렌처럼 죽어가면서도 계속 중얼거려야 할 그 무엇이 있다. 정의건 평화건 해방이건 민주주의건 세월호건 간에 사람들이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느냐고 비웃는다 해도 우리는 중얼거려야 한다.

영화는 마지막에 눈 덮인 예수상을 다시 보여준다. 성서가 오늘 모든 이들에게 왜곡된다고 해서 성서의 진실이 왜곡되는 것은 아니다. 봄이 오면 예수상의 눈은 녹을 것이다. 성서를 왜곡하는 자들이 녹아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성서가 본디 말하고 싶었던 것을 계속 중얼거려야 한다.  미니의 가게 문이 정상적으로 열리고 닫힐 때까지.

김기대 목사 / 평화의 교회

김기대  newsm@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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