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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 살해와 친자 살해 모티브의 승자는?세대 갈등에 대한 두 시각, <사도>와 <암살>

2015년 한국 영화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암살>(최동훈 감독, 2015년)과 <베테랑>(유승완 감독, 2015년)이 관객 천만을 훌쩍 넘어 섰고 <사도>(이준익 감독, 2015년)는 개봉 1개월(9월 16일 개봉)이 되어가는 현재 600만을 조금 넘어 섰다. 천만은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국 영화 박스 오피스 역대 15위권(한국영화진흥위원회 전산망 기준, <베테랑>은 3위, <암살>은 6위) 정도에 머물 전망이다. 현재 14위는66,372,140,706 명을 동원한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이석훈 감독, 2014년)이다.

그 동안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후기 조선의 계몽 군주 정조의 이야기, 즉 모두가 아는 이야기로 이만큼 관객을 모았다는 것은 이례적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영화는 사도 세자(유아인 분)가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8일과 사도세자의 출생에서부터 아버지 영조(송강호 분)와의 갈등에 이르기까지의 회상이 교차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전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도세자에 대한 평가는 노론(영조)과 소론(사도세자)의 암투에 희생된 인물, 개혁군주를 꿈꾸다 좌절한 인물, 정신이상자, 살인마 등 극과 극이었는데 이번 <사도>에서는 환관을 죽인 정신이상을 가진 사도세자, 아버지 영조를 죽이려 했던 패륜 세자였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안암골 비구니 가선을 불러들여 난잡한 행동을 했다는 역사의 기록도 영화는 담고 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도 나오는 <권력과 인간-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정병설 지음, 문학동네, 2012년)의 시각을 많이 빌려 온 것으로 보인다.  

<사도>에서 영조는 아들에 대한 불만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천한 무수리 출신의 생모로 인한 열등감과 이복 형인 경종 임금을 독살했다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영조는 이런 약점이 없는 아들이 자기의 기대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 가자 점점 불만이 쌓여 간다. 이런 불만은 평생을 노론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살아온 자신에 비해 자유분방함을 가지고 있는 세자에 대한 열등의식으로도 표출된다. 반복되는 왕위 선위 소동, 대리청정  번복, 세자 책봉 취소, 뒤주 살인에 이르면서 그의 열등감은 자신에 대한 복수심으로 번져 아들을 희생양 삼는다.

   
▲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양위를 발표한 뒤 양위를 거두어 달라는 사도 세자를 뒤로 하고 궁을 떠나는 시늉을 한다.

  

이런 갈등 구조는 한국 사회의 부자 관계에서 늘 있어왔던 구도다. 전쟁세대는 산업화 세대를 못 마땅해 했고 산업화 세대의 눈에는 정의, 민주 따위를 외치는 민주화 세대가 철없어 보였다. 어언 4~50대가 된 민주화 세대에게 지금의 젊은이들은 패기 없는 '루저'로만 보인다. 전세대는 항상 고통을  딛고 일어선 영웅설화의 주인공들이고 다음 세대는 전세대가 다 만들어 놓은 밥상도 챙겨 먹지 못하고 걷어차버리는 패륜세대다(영화 <국제시장>이 대표적이다).  전 세대는 '패륜세대'를 가르치는 듯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가치관과 다르게 살아가는 자식들에 대한 열등의식을 억지로 감추고 그것을 훈계로 포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조는 모계 신분과 경종 독살의혹의 한계를 극복한 입지전적 인물로 자신을 부각시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입지전을 세자에게 전하려는 마음으로 세자를 위한 책을 직접 써서 가르침을 주지만 세자는 그렇게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영조에게는 나쁜 말을 들었을 때는 귀를 씻은 후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첫 말을 건네는 습관이 있었다. 일단 말이 들어온 귀를 씻어내고 말을 통해서 그 '화'가 다른 이에게 전달되게 하자는 의도인데, 영조가 경종 독살설을 제기하는 죄인들을 친국하고 침소로 돌아와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그런데 그날 "별일 없냐?"라는 첫 말을 들은 사람은 사도 세자였다. 세자는 그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침전으로 갑자기 부름 받았다. 경종과 관계된 의혹으로 인한 '액땜'을 아들에게 넘긴 아버지가 영조다.

마지막 뒤주에서 죽어가는 아들과 뒤주 밖의 산 권력 아버지는 영혼의 대화를 나눈다. 아버지는 자신의 속 마음을 알아달라고 강변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다고 호소한다. TV 아침드라마 속에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 사이에 낀 아들이 나누는 대화와 별반 다름없다. 영화의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애써 '정치'를 외면한 감독

영화는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다”라는 영조의 말로 시작해서 혜경궁 홍씨(문근영 분)의 회갑잔치로 끝난다. 이런 설정은 부자 갈등을 세대의 보편적인 갈등으로 보지 말고 그 집안의 일로 좁혀서 보라고 유인하는 감독의 도구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혜경궁 홍씨는 왕비의 격에 맞는 대접을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영조)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정조(소지섭 분)는 왕비급으로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어 준다. 사도 세자가 예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생모 영빈 이씨에게 왕비급의 회갑연을 열어준 것을 기억하기 때문인데 영빈 이씨는 왕비는 아닐지언정 후궁인 '빈'이었고 게다가 당시 사도 세자는 왕도 아니었고 '불법', '탈법'이미지가 굳어진 상태였다.

반면 지금 정조는 국왕이다. 국왕이 국법을 어기면서까지 취소된 세자빈이 최고의 직책이었던 어머니 '홍씨'에게 왕비의 예를 갖추는 것은 아버지 사도세자 보다 더 파격적인 행보였고, 국가보다 가족이 먼저라는 의미다.  가족이 먼저라는 인식을 탓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국왕이 국법을 어길 수는 없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이후 개혁 군주로 각인되어 후대에 인기 좋은 정조 임금이지만 이 장면에서는 가족사를 위해 별 짓 다하는 한국의 현직 대통령이 오버랩된다.

이처럼 이준익 감독은 철저하게 정치를 외면한다. 노론이 전횡하던 왕실의 정치적 역학 관계도, 노론 집안을 지키기 위한 혜경궁 홍씨의 줄타기도 슬쩍슬쩍 다룰 뿐 깊이 있게 접근하지 않는다. 

오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세대 갈등은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다. 전세대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정치'를 주입하고, 현 세대는 그것을 밀어 낸다.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전 세대 혹은 전 세대와 가치관이 맞는 상위 계급들은 극중 영조처럼 “네가 국방에 대해 뭘 알어?”라며 '종북몰이'를 시작한다.  종북은 실체가 없는 공포의 알약이지만 한 쪽에서는 그 약을 억지로 먹이려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 그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 대립 구도 속에서 그 약의 실체가 뭔지는 밝혀지지 않는 공허한 싸움만 되풀이 한다.

"아버지 왜 나에게 정 한 번 주지 않으셨어요!", "다 네가 잘되라고 그랬다!"는 신파적 대화로 오늘날의 세대 갈등이 풀린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대 갈등이라는 말은 너무 말랑하다. 세대 전쟁이 옳다.  세대 전쟁 속에서 이기려면 전세대의 그릇된 가치관과 단절해야 한다.

현대의 정치 철학자들이 '단절'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그들은 단절이 전통의 부정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그 옛날 예수와 사도 바울이 '단절'하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런 권고는 영화를 통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암살>은 생부 살해 모티브로 친일 세대와의 단절을 표현해 내었고, <차이나 타운>(한준희 감독, 2014년)에서 일영(김고은 분)은 생모가 아닌 엄마(김혜수 분)와 힘겹게 단절한다. 이처럼 단절이 대세인 세상에 감독은 그것을 오히려 가족 속으로 억지로 끌고 들어 온다. 마치 살부 모티브를 표방하는 요즘 영화의 흐름을  '디스'(disrespect)하는 것 처럼. 

처음에는 영조와의 단절을 시도하다가 영화 후반에 갈수록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애정결핍을 가진 아들로 사도세자를 묘사하면서 영화는 결국 힘을 상실해 버린다.

정치적 사건을 부자 갈등으로 축소 시킨 감독이 관객에게  미안해서였을까?  영화에는 정치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지 아닌지 모호한 두 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경종 독살설을 제기하던 사람들이 영조 앞에서 "우리 지역(호남)에서는 당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소!"라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영조와 사도 세자가 행차를 나가던 중 폭우가 쏟아지자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한 말이다. "너는 그 지역(호남) 에서 인기 얻으려고 (그곳에 발령받아 가는 사람에게) 시를 써주면서 인기나 얻으려 하니 비가 와야 할 호남에는 비가 안 오고 이렇게 오늘 행차 길에 비가 오는 것이 아니냐"며 사도 세자를 더 이상 따라 나서지 못하게 한다.

역사 기록에 있는 이야기인지 확인할 길 없으나  영화 진행상 크게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두 장면을 왜 집어 넣었을까? 한국 사회에서 '호남'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생각하면 할 수록 그 함의를 파악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 미주뉴스앤조이>

김기대  gilbert@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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