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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줘!'내' 믿음은 정말 내 것인가?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확산으로 사람들은 두 가지 재미를 갖게 되었다. 하나는 다른 이의 사생활을 엿보는 관음증과 하나는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이 다른 이에게 어떻게 평가받는지를 알아보는 재미다. 더 많은 ‘좋아요’를 받기 위해 자신을 어느 정도 포장하는 것은 흠결도 아니다.

영화 <나를 찾아줘> (데이빗 핀처 감독, 2014년)는 부부의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같지만 실은 타자의 시선 속에 갇혀버린 현대인의 비극을 다룬 영화다. 원작은 2012년 발행된 길리언 플린의 동명 소설이다.

닉(벤 애플렉 분)과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 분)은 뉴욕에서 프리랜서 작가 활동을 하다가 직업을 잃자 닉의 고향 미조리주로 돌아 온다. 이곳에서 그들은 뉴욕 생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저택을 임대하고, 닉은 조그만 대학에서 강의자리를 얻고, 쌍둥이 여동생 마고와 함께 선술집 더바(The Bar)를 차린다.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는 ‘그 선술집’, 개별적 술집이 아니라 세상의 술집을 대변하는 보편성을 가진 작명이다. 이들은 자신이 곧 보편의 진리라고 믿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날 아침 외부인의 침입 흔적과 함께 아내 에이미가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유명작가의 딸이자 어머니 소설의 주인공이란 유명세 때문에 실종 하루만에 에이미 찾기 웹사이트와 에이미 찾기 자원봉사단이 꾸려진다. 언론의 취재 열기는 당연한 터, 닉과 에이미는 하루 아침에 전국적인 스타가 된다. 자원봉사단에 온 사람들은 실제 에이미를 찾는 일보다 자신들이 이 사건에 어떤 형태로든지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즐긴다. 일부는 닉과 셀프 카메라를 찍어 그것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닉은 팬(?)들과 사진을 찍을 때마다 연예인처럼 웃음을 지어 보인다. 억지 미소같지만 실제로는 아내의 실종에 대한 그의 속마음을 잘 표현하는 표정이다.  

경찰의 수사가 답보 상태가 될 수록 닉이 용의자에 오른다. 집에서 발견된 핏자국과 어설픈 격투 흔적들이 이러한 심증을 뒷받침한다. 그러던 중에 닉이 1년여 이상 제자와 불륜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 발각되자 방송은 이미 닉을 진범으로 단정한 채 분위기를 몰아가고, 배우자 살인범 전문 변호사까지 붙는다.

닉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살해해 시체를 유기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에이미는 어디로 갔을까?  모든 것은 에이미의 완벽한 조작이었다. 스스로 피를 뽑아 혈흔을 남기고, 자신을 ‘사망에 이르게 한’ 둔기를 한 여름에 벽난로에 넣어 태운 흔적을 남기고, 이웃집 수다장이 여인에게 가정 불화를 토로해 왔고, 뒷골목의 유명한 마약상에게 총기 구입을 의뢰하고. 실제로 하지 않은 임신 증거를 남긴다. 에이미는 이런 일들을 일기장에 남기고 스스로 사라진 것이었다.

   
▲ 에이미는 다른 범죄를 저지른 뒤 실종 자작극을 끝내고 닉에게 돌아온다

결혼 당시의 환상이 깨어진 상태에서 에이미는 닉을 살인범으로 몰아 감옥에 가두려고 계획해왔다. 그 일을 위해 자신이 변사체로 발견될 수 있도록 자살 계획까지 세운다.

하지만 강도를 만나 계획이 어그러지자 어릴 적 자신에게 집착했던 고교동창 콜린스를 찾아 간다. 엄청난 거부인 콜린스의 도움으로 은둔생활을 하던 중 새로운 계획을 세워 완수하고 난 뒤 닉에게 극적으로 돌아온다.

닉의 혐의는 풀리고, 두 사람은 천신만고 끝에 사랑을 되찾은 부부로 매체 앞에서 ‘연기’한다.  닉은 이 모든 것이 에이미의 음모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증거도 불충분할 뿐더러 죽음을 무릎쓰고 남편에게 돌아온 아내를 내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은 사랑도 없고, 서로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지만 타자의 시선들 앞에서 포장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영화는 우리가 되었으면(Wanna Be) 하는 모습과 진짜 우리 모습 사이, 그리고 대중들에게 비친 자신들의 모습 이 세 개의 이미지 간극에서 오는 비극을 보여준다. 에이미는 실종 자작극을 꾸미고 숨어 다닐 때 자신의 자살 계획을 담은 메모에서 'kill  myself'라고 쓰지 않고 'kill self'라고 쓴다. 에이미는 이런 이미지 간극이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자아’들의 공통된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아’라고 표현한 것이다. 마치 술집의 이름을 그 선술집이라고 지은 것 처럼.  즉 자신의 경우가 모든 인간의 경우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의 반영이다. 실제로 에이미의 자아 이미지 간극은 모든 사람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난다.

어메이징 에이미

에이미는 유명 작가인 어머니의 작품 <어메이징 에이미 (Amazing Amy)>속의 에이미와 실제 에이미 사이에서 고민하며 자라났다. 어머니의 동화 속 에이미는 완벽하고, 실제 에이미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독자들은 두 에이미를 동일시했다. 처음에는 동화 속 주인공에 못미치는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차츰 동화 속 에이미처럼 거짓으로 사는 데 익숙해 진다.

사소한 경험을 과도한 체험으로 극화시키는 작화증 환자처럼 에이미는 어느 모습이 자신의 모습인지 자신도 헷갈려 한다. 그리고 어느 파티장에서 결혼의 최적화된 상태로 닉을 만난 것이다. 닉과 에이미는 세상이 규범으로 정해 놓은 '좋은 결혼'을 위해 연기를 할 줄 알고 있었다.

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치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어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과는 미분화된 상태다.

특히 에이미는 자신마저 타자화시키면서 만들어진 자신을 연출해 나간다. 그러다가 남편을 통해 자신을 찾으려다가 실패하고 이제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확인해 간다. 영화의 원제는 '가버린 소녀(Gone Girl)'인데, 끝까지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소녀에 상태에 머물러 있는 에이미의 정신 상태를 암시한다. 반면 우리말 제목 '나를 찾아줘'는 훨씬 철학적이다. 에이미가 되었건 닉이 되었건 타자의 시선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를 찾으려다 실패한 사람들이다. 닉과 에이미는 라깡이 말한 유아적 상상계나 아버지에 의해 좌우되는 상징계를 심각하게 예속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며 부부 관계를 유지해 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부부에게 있어서 상징계의 대타자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에이미는 자신을 가공해낸 어머니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닉은 여동생과 미분화된 관계를 통해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꿔 나갔다.

 

나를 찾는 일이 왜 그리 어려운가?

불교에서는 나를 비우라고 하지만 이런 개념은 본래 일본 선불교로부터 배운 얼치기 대중 선사들의 가르침이다.  본래 불교에서는 비우고 말고 할 것 없이 '나'라는 것이 없다. 그만큼 '나'라는 존재는 불가해한 존재다. 사도 바울도 이 문제로 고민했다.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로마서 7:18-20)

사도바울에게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이란 타자의 욕망이 나에게서 작동하는 경우다. 닉과 에이미의 경우 서로가 서로에게 '원치 않는 악한 일'이 을 강요하다가 결혼이 파탄났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히 부부갈등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판 '사랑과 전쟁'이 아닌 이유는 우리 모두의  'SELF'가 이처럼 타인의 시선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 혹은 '믿음'은 나의 주체적 결단인가? 아니면 나를 나 아닌 나로 만드는 객관화된 타자인가? 화려하고 상투화된 신앙 용어로 덕지덕지 덧붙여진 '내'가 아직도 진짜 '나'인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닉과 에이미 보다도 자기 성찰이 덜 된 사람들이 아닐까?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 미주뉴스앤조이>

김기대  gilbert@www.newsnjoy.us

<저작권자 © M 뉴스앤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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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134 (172.XXX.XXX.225)
2015-09-27 04:55:31
찬성:1 | 반대:1 찬성하기 반대하기
영화의 주제(의도)와 목적은 아주 좋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뭔가 메세지를 현대이들에게 주고자 했다. 또 영화평(위의 글)도 뛰어나게 잘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평으로 말미암아 영화를 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뭔가 주제를 부각시키려면 극단적인 묘사를 해야한다. 그런면에서 영화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심리적인 한 단면을 잘 묘사하고 평가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거짓과 가장에서 벗어나 삶의 진실에 접근해야 한다. 복음만이 삶의 진실을 보게하는 능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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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173.XXX.XXX.127)
2015-09-28 11:38:43
찬성:1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솔직히 님이 제 댓글에 단 댓글을 보고 감정이 상했습니다. 저나 혹은 제 글을 비난한 것처럼 보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쓴 글에 이렇게 기분이 상하는 게 합당한가 생각도 해봤지만, 기분이 상한건 상한겁니다. 님 글도 뭐 썩 탁월한 글 아닙니다. 말의 내용은 없고 길게 늘여쓴 정도. 말에는 인격이 담겨있는 것 정도는 알텐데.. 생각좀 하고 글을 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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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134 (172.XXX.XXX.225)
2015-09-28 12:31:34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 글을 삭제하려고 하는데 삭제가 안되네요. 귿이 변명한다면 기사에 대한 평이였습니다. 평하고 나서 생각하니,미안해서 좋은 면도 한번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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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173.XXX.XXX.127)
2015-09-29 07:37:14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사과해 주셔서 맘이 풀렸습니다. 그러니까 제 글이 팩트는 없고 인터프리테이션만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거죠? 저는 제 댓글 밑에 그렇게 달아놔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다시 저랑 이런 논쟁을 하실 일은 없겠지만 ... 제가 글쓰는 일을 해서 그런지 글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그럼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고, 늘 의견 피력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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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134 (172.XXX.XXX.225)
2015-10-01 06:02:30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고,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글쓰는 분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존경합니다. 좋은 글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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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173.XXX.XXX.127)
2015-09-24 14:10:20
찬성:4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와 스토리가 진짜 탄탄하고 재미있네요.
심리학적 접근도 재미있고, 꿈보다 해몽! 편집장님의 해석이 아주 탁월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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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134 (172.XXX.XXX.225)
2015-09-27 02:40:41
찬성:2 | 반대:1 찬성하기 반대하기
이런 글을 보고 "니체가 말한 fact는 없고 interpretation만 있다"라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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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173.XXX.XXX.127)
2015-09-28 11:32:48
찬성:1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제 댓글이 좀 추상적이었나 봅니다. 팩트는 기사에 다 있고, 댓글은 인터프리테이션만 달면 안됩니까? 꼭 니체까지 끌어들이면서 말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니체가 어느 책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요?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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