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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 때 무엇 때문에 싸웠었지?한국 전쟁 65년, 평화가 멀기만 한 시절에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65년, 최근 북한은 두 선교사에게 간첩죄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했고, UN북한 인권사무소, 싸드, 탄저균 등의 용어들이 남한의 언론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전쟁이 끝나도 간첩, 미사일, 세균전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인기'가 있다.  조선조의 가난한 세월도 함께 견뎌냈고, 모진 일제 36년도 견뎌낸 동포들이 무엇 때문에 해방 5년 만에 원수가 되어 서로 물고 뜯고 죽이고 했을까? 분단의 책임은 미 일 소련에게 있는데 제 나라에서 남북은 그들의 용병처럼 ‘용감하게’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이념도 없고 민족도 없고 명분도 없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분단을 고착화 하고 있을 뿐이다. ‘분단 장사’로 표를 얻어 권력을 잡고 그 결과로 부를 축적한 거대 몸집들은 몸이 둔해 져 사회적 재앙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안보만큼 백성을 통제하기 좋은 무기는 없다. 북풍이 불어오면 개혁 진영의 따 놓은 당상도 도로목이 된다. 민중은 언제쯤 각성하게 될까? 역사의 진보는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바라는 희망고문이 아닐까?

1920년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감독, 2006년, 59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보면 우리에게는 아직 더 견뎌야 할 고통의 세월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외세와 자국민의 갈등을 다룬 영화는 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흡사하다.

영화 제목은 로버트 조이스의 같은 제목의 시에서 따왔다.

그녀를 향한 오래된 사랑

나의 새로운 사랑은 아일랜드를 생각하네

산골짜기의 미풍이 금빛보리를 흔들 때

분노에 찬 말들로 우리를 묶은 인연을 끊기는 힘들었지

그러나 우리를 묶는 침략의 족쇄는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네 (시 일부분)

시는 1798년 아일랜드 봉기에 나섰다 연인을 잃었던 청년의 슬픈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라고 한다.

 

이야기가 많은 땅, 아일랜드

 

아일랜드, 척박하지만 이야기가 많은 땅이다. 다음 해 농사를 위해 기근 중에도 큰 감자를  먹지 않고 씨 감자로 남겨 두었다는 이야기는 목사들의 단골 예화고, 주당들에게 아이리쉬 위스키는 명주 반열에 끼는 술이다. 기원후 5세기 녹색 옷으로 상징되는 선교사 세인트 패트릭이 그 땅에 증류법을 처음 소개했으니 위스키는 패트릭이 만든 술이나 다름없다. 19세기 말 <진보와 빈곤>이 출판된 후 저자 헨리 조지가 아일랜드에 초청받아 강연을 다닐 정도로 토지 수탈이 심했던 곳이며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땅이다.  존 F 케네디가 처음으로 비 앵글로 색슨계 미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암살당하고 동생 로버트 마저 유세 중에 암살 당한 사건도 그들의 슬픈 이야기에 포함된다.  

영화의 배경이 되던 1920년대보다 조금 앞선 시점인 1918년 11월 선거에서 신페인(‘우리 자신’이라는 뜻)당이 다수 의석을 확보하면서 아일랜드 의회를 설립, 아일랜드가 독립국임을 선포했지만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1920년대 아일랜드, 청년들이 토착 스포츠인 헐링을 즐기고 있다. 게임이 끝난 후 마을에 돌아왔을 때 영국군이 들이 닥쳐 청년들을 제압한다. 일종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는 이유인데 그 과정에서 자기의 이름을 아일랜드 고유 발음으로 말하던 미하일(그는 마이클이라고 했어야 했다. 나는 살기 위해 내 이름을 김기대가 아니라 키다이 킴으로 발음했을 것이다)이 군인들에게 맞아 죽는다. 재판도 없이 친구와 가족들이 보는 데서 당한 이 억울한 죽음에 친구들은 분노할 뿐 슬퍼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의사 다미안(킬리언 머피 분)은 이런 일을 목격하고도 자신의 꿈을 위해 함께 아일랜드를 위해 싸우자는 친구들의 만류를 뒤로하고 런던을 향한다. 그러나 역에서 영국군을 기차에 태우지 않으려는 기관사와 역무원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기차를 떠나 보낸다. 다미안은 형 테디(패드레익 딜레이니)가 이끄는 IRA(Irish Republican Army)의 단원이 된다.

IRA와 영국군 사이에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악덕 지주는 자신의 농장에서 일하는 크리스가 수상하다고 영국군에게 보고하고 크리스의 자백으로 다미안과 테드를 포함한 청년대원들이 구속된다. 정식 재판도 없이 사형에 처해질 이들은 아일랜드계 영국 병사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하지만 3명은 미처 구하지 못한다.

다미안은 기차역에서 영국군에게 폭행당했던 기관사 단을 감옥에서 만난다. 단은  1916년 아일랜드 저항을 주도하다가 사형당한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의 추종자로 “우리가 당장 내일 영국군을 몰아 내고 더블린 성에 녹색기를 꽂는다 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모두 헛될 뿐이며 영국은 계속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지주와 자본가, 상권을 통해”라는 코널리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여긴다. 다미안도 그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탈옥한 다미안과 테디, 동료들은 지주와 크리스를 처형하는 데 여기서부터 민족과 독립 보다는 보복과 회한이 이들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토록 증오하던 영국군처럼 재판없이 밀고자를 처형할 때부터 영화는  뭔가 꼬이고 있음을 암시한다. 크리스를 처형한 다미안은 연인 시네이드에게  "이렇게 우리가 싸우는 아일랜드가 그럴 가치가 있기를 바란다"며 흐느낀다.

아일랜드 장악 지역에서 벌어진 지주의 고리대금에 대한 재판에서 처음으로 테디와  다미안이 대립한다.  형 테디는 재판 받던 지주를 데리고 나가 버린다. 아무리 IRA의 리더라고 하더라고 그들이 세운 자치 정부의 재판정을 스스로 무시한 것이다. 재판정이 고리대금업자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 테디를 분노케 했는데 테디는 이런 자본가가 돈줄이 되어 독립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반면 다미안은  지주 자본가는 모두 인민의 적이라는 논리를 전개한다. 해방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이 양심적인 자본가 지주를 처형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한국에서 벌어졌던(지금도 진행형인)  NL (민족 자주 계열)과  PD(민중해방계열)의 다툼이 1920년대 아일랜드에도 있었다. 

 

진짜 싸움이 시작되다

 

마침내 영국과 아일랜드 간에 전쟁이 종식된다. 양측은 얼스터 6주(지금의  북아일랜드)를 영국령으로 그대로 남겨두고,  아일랜드는 완전 독립국이 아니라 자치령으로 두는 조건에 합의했다. 테디는 부분적인 성취지만 일단은 받아들이자는 입장이고, 다미안은 지주 자본가를 포함한 영국의 기생 세력들을 완전히 몰아내자는 입장이었다.

형과 동생은 조이스의 시구처럼 견디기 어려운  '침략의 족쇄'를 함께 끊어 오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향하는 더 견디기 어려운 시대의 정중앙에 서게 된다.  조약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에 내전이 발발한다.

일제하에서 함께 투쟁하던 형제 자매 이웃들이 생소한 '주의'에 매몰되어 서로를 죽인 한국 전쟁과 정말 비슷하지 않은가?  조약찬성파는 반대파를 찾아 내기 위해 옛날 영국군이 그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가택수색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한 여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옛날에 너희들을 숨겨주고 먹여 주었는데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동지는 간 데 없고 원수만 남았다.

계속해서 독립군으로 남은 조약 반대파는 무기를 탈취하고 그 과정에서 어제의 동지들을 사살한다.  이처럼 은인을 원수로 몰아가고,  앙갚음을 정의로 위장하고, 독선을 명분으로 위장하는 것이 전쟁이다.

마침내 다미안은 테디에 의해 사형당한다. 손톱이 뽑히는 고문에도 동료들을 지켜냈던 테디는 자본가도 포용하고 외세도 인정하자는 온건파가 되어 동생을 사형시키고, 빨리 아일랜드를 벗어나 런던에서 출세하고 싶었던 의사 다미안은 조약을 인정 못하고 목숨까지 잃는다.

계급주의 시각으로 보면 다미안이 옳고, 국제 정세를 인정하고 온건론을 받아들이자는 입장에서는 테디가 옳다. 그런데 역사에서 이런 논쟁이 없었던 적이 있었고, 또 해답을 준 적이 있었던가!

어떤 이들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감독 켄 로치가 계급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켄 로치 자신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계급도 민족도 온건도 강경도 정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가톨릭 신부가 교회에서 강경파를 종교의 이름으로 비난하는 것에 다미안은 당신도 지배 계급의 편이라고 비난하며 교회를 떠난다. 가톨릭이 삶의 전부였던 문화에서 계급은 신앙보다 위에 있었고 목숨보다도 소중했다.

지배자들은 항상 분열과 분할을 통해 피지배자들을 요리한다. 민족과 계급, 종교도 지배자들의 입맛에 따라 조리될 뿐이다. 아일랜드 상류층은 영국계 아일랜드 인으로 주로 개신교(성공회)인들이고 하층민들은 가톨릭계 농민들이어서 서로 적대한다는 분석이 아일랜드의 현실이지만 이 또한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다미안은 상류층으로 편입을 마다하고 민중과 함께 서며 신부는 민중과 연대하지 않고 상류층을 대변하면서 '정치학'의 분석을 무색하게  한다.

 

진정한 평화는 어디에?

"네가 싸우는 적이 누군지는 알기 쉽지만, 네가 왜 싸우는지는 알기 어렵다.(무엇에 반대하는 것은 알기 쉽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는 어렵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평화는 원하고 있는 것을 알기 위한 노력에서부터 시작한다. 적대 놀이는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것이 종말론적으로 옳은 것인 가부터 성찰해야 한다. 그 처참했던 전쟁에 민족과 해방과 반공과 자유가 정말 우리가 원하던 것이었을까? 그 개념들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정립한 것인가? 지배자들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던가?

이제 좋은 개념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에 익숙해져 있던 자신을 탈출시키지 않는 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 상대진영을 비판하기 전에 내 진영의 익숙한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워 지지 않으면 평화는 요원해 진다.

사도바울은 전통이든 관념이든 익숙한 것과 단절하라고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3)

김기대,편집장 / <뉴스 M/ 미주뉴스앤조이>

 

 

김기대  gilbert@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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