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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국제 시장>을 봤다면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

한인이 많이 사는 지역답게 로스앤젤레스의 한인 극장에서는 한국 영화를 본국 개봉과 거의  같은 시기에 관람할 수 있다. 지난 연말, 한 해의 마지막이라는 시기적 특성과  <국제시장>의 명성이 겹쳐 많은 사람들이 극장으로 모여 들었다. 나의 선입견일까? 관객들의 표정이 사뭇 비장해 보였다. 영어 자막이 제공되기에 자녀들을 동반하고 온 중년들도 있었고, 대부분 중장년인 관객들은 이제야 비로소 나의 삶을 대변해주는 영화를 찾았다는 표정을 짓는 듯했다.

   
영화 <국제시장>

그런데 자녀들을 동반한 부부들은 자녀들의 나이를 볼 때 나보다 훨씬 젊었고(하기야 대학생 이상 쯤 된 자녀들이 부모들을 따라 극장에 올리 없지만), 내 또래를 넘어서는 관객들도 많지 않아 보였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전쟁도, 파독 광부와 간호사도, 월남전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관객의 대부분이었다는 말이다.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중 교통이 불편한 지역적 특성상 한국과 달리 영화관을 쉽게 찾을 수 없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 자체가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했었는데 굳이 영화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 세대의 삶이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 했다는 점에서  <국제시장>을 둘러싼 이념 논쟁은 불편하다. 다음 세대는 그들의 질곡과 공헌을 인정해 주면 된다.

영화는  어린 나이에 흥남부두에서 월남한 윤덕수(황정민 분)의 개인사를 다룬다. 아버지가 미처 따라오지 못한 상태에서 어린 덕수는 가장이라는 짐을 짊어진 채 어머니와 두 동생을 돌본다. 가슴에는 흥남부두에서 이별한 아버지와 여동생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하고, 몸은 부산 국제 시장에 정착한 가족들을 돌보는데 던진다. 자신은 잊은채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위해 파독광부로 나서고, 여동생의 결혼자금을 위해 전쟁중인 베트남에 노동자로 자원한다. 이산가족 상봉때는 흥남에서 잃어버린 후 미국으로 입양된 동생 막순이도 만난다. 비극적인 한국사의 현장을 거칠 때마다 덕수는 정주영(현대그룹 창립자), 앙드레 김(디자이너), 이만기(씨름선수), 남진(가수)들과도 우연찮게 조우한다.

윤덕수의 삶은 한국 현대사 자체였다는 설정이다. 헐리우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충무로도 진보적 색채가 강해서 그동안 보수적인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왔다. 예를 들어 강제규 감독의 2011년작 <마이 웨이>는 장동건, 오다기리 조 두 연기자를 내세우고도 흥행에 참패했다. 그러나 <변호인>(양우석 감독, 2013년)을 마지막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였는데  <명량> (김한민 감독, 2014년)에 이어 이번 <국제시장>이 흥행에 성공하자 사회 전반의 보수화와 더불어 영화계도 보수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고 보수 언론은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이념논쟁을 부채질 했다.

이에 대해 윤제균 감독은 아버지 세대에 대한 감사를 담았을 뿐이라며 이념적 논쟁으로 비화되는 것을 우려했다. 윤감독은 약하기는 했지만 영화가 산업화 세대와 국가주의에 대한 찬사로만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두 장면을 집어 넣는다.

하나는 희생만 하는 덕수에 대한 아내 영자(김윤진 분)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을 때  국기 하강식이 거행되자 두 사람이 어정쩡하게 국기를 향해 일어 서는 장면이다. 이는 누가 봐도 개인사에까지 국가가 영향을 미치던 때를 조롱하는 장면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예를 갖추는 애국심’으로 영화를 해석했다.  박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선사한 2014년  최고의 코미디다.

다른 하나는 애국심 논쟁에 가려 놓친 장면인데 동남아 출신 젊은 연인의 데이트 현장을  한국의 10대들이 조롱하자 덕수는 나서서 고등학생들을 야단친다.  덕수 자신 또한 부산에 정착한 이방인이라는 회한이 깊게 담겨 있는 장면이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남북한 어디도 정착하지 못하고 제 3세계를 택했다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주인공 이명준이 슬쩍 스쳐 지나간다.

시장도 ‘국제’시장이고, 지역신문도 ‘국제’ 신문이고, UN군 묘지가 있는 ‘국제’ 도시인 부산에서 덕수는 먹고 살기 위해 정을 붙이고 살았을 뿐 그곳은 이방 지대였던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공치사는 헌사가 아니다

영화의 이념 논쟁은 쓸 데 없고 정치인들의 관람평은 영화의 인기에 묻어가려는 수법으로 보면 된다. 영화 속 덕수의 세대는 분명 고생했고, 산업화의 주역이 되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지도 못한 그들에게 자본주의 윤리를 찾는 것은 무리다. 다음 세대는 민주화를 이루었고 민주화 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즉 산업화 세대의 혜택이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무늬는 민주화 세대이면서 사는 모습은 산업화 세대가 추구했던 물질 지상주의에 벗어나지 못하는 세대에 대한 비판도, 오직 먹고 사는 문제만 집중하면서 성찰의 기회를 놓쳤던 산업화 세대에 대한 비판도 굳이 영화에 담을 필요는 없다.

<국제 시장>이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아버지에 대한 헌사’(Ode to My Father)이듯이 아버지 세대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다면서도 감독의 기억 속 아버지는 희생의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아버지를 희생에만 묶어 둔다면 그것은 헌사로 포장된 후세대의 폭력이다. 오직 장남이라는 이유로 감당한 희생을 헌사로 칭송하는 것은 위선적이라는 말이다. 덕수는 행복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을 사진에 담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아 버린다. 행복조차 익숙하지 못한 덕수는 동정의 대상이어야 한다.

 

   
▲ 덕수 아내 영자의 희생은 영화속에서 칭송을 받지 못한다. 덕수는 행복을 누리는 데 익숙하지 않아 눈을 감아 버린다.

극장을 찾은 4,50대의 부모들은 그들 스스로는 덕수 만큼의  희생도 해보지 않고 자식들에게 폭력의 기억을 전승한다. 그들은 내심 자녀들로부터 이민이라는 결단을 한 그들의 선택을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소수 인종으로 백인들 틈에서 자녀들이 겪었을 희생은 아무렇지도 않다.

영화 <국제시장>의 잘못은 영화나 관객 모두 폭력의 기억을 정당화하고 계승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게 <국제시장>의 가장 큰 문제이다. 아버지 세대의 고생을 희생양 삼아 사회 모든 모순을 미봉하려 한다. 어쩌면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담긴 폭력의 문제와 그리 잘 맞아 떨어지는 영화인지! 르네 지라르는 공동체의 모방 욕망이 짝패를 경쟁자 삼아 마침내 폭발에 이르렀을 때 그 사회는 희생양 하나를 선택해 그를 폭력적으로 제거하고 잠시 평온을 찾는다는 희생양 이론을 주장한다. 덕수는 헌사를 빙자해 다음 세대가 욕망을 감추기 위해 선택한 희생양이다.

물론 덕수의 삶을 시비걸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 세대는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덕수는 “이 고생을 우리 자식 세대에게 물려 주지 않고 우리가 겪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독백한다. 하지만 오직 가족만을 위해 희생했던 자기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사회 역사적 의미를 찾아 보지만 정작 현세대가 안고 있는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는 무지한 독백일 뿐이다. 비정규직으로, 멀기만 한 주택구입 자금 마련으로 지금 세대는 또다른 형태의 전쟁을 겪고 있는 것을 외면해 버린다. 1965년에서 1973년에 이르는 월남전 참전 한국군 사망자가 5,000여명인데 지금 한 해 자살자수가 15,000명이다. 이 어려운 시대를 자식들에게 넘겨주지 않았다는 말은 자신의 고생을 인정해 달라는 투정에 다름 아니다. 또한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아내 영자의 희생도 지대했는데 영자의 희생은 덕수 어머니의 희생보다도 인정받지 못한다. 전형적인 가부장제 모순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람들은 <국제시장>을 영화 <포레스트 검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1994년)에 비교하곤 한다.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 분)는  미국 현대사의 모든 장면에 함께 한다. 그러나 발달 장애아인 그에게 기억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시대를 살았을 뿐 그는 희생하지 않고 앞을 향해서 달린다. <포레스트 검프>가 앞을 향해 달린 영화라면 <국제시장>은 옛 기억들을 자꾸 지금에 각인시키려고 시도한다.

소설로는 인기를 얻었지만 영화로는 실패한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 책들, 2013년) 의 주인공 알란 카손 역시 근대사의 모든 장면에 함께 한다. 그러나 그는 100세가 되어서도 자신의  화려했던(때론 괴로웠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뒷골목 건달들이나 할 법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자유를 경험한다. 역사와 같은 거대 담론이 그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100세나 된 지금의 낯선 경험들이 그를 더욱 기쁘게 한다.

그러나 <국제시장>에서는 끝가지 덕수를 과거에 묶어 둔다. 덕수가 인생의 마지막에 가서야 유일한 삶의  결실인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 를 처분하기로 결정하지만 그는 자유롭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후대는 그것을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칭송한다. 세상에 이런 허위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국제시장>을 보면서 정작 눈물을 흘려야 할 지점은 희생에서 끝까지 헤어나오지 못한 채 희생양이 되어버린 덕수와 그것을 바라보고 헌사만을 보내며 온갖 모순을 감추려는 우리 안의 위선이다.

철학자 이진우는 기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기억하기 위해 만든 기억의 수단이 우리보더 더 많이 기억하는 ‘기억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억하려 한다. 마치 ‘내 기억하리라’가 아니라 ‘내 잊지 않으리라’라는 더욱 결연한 의지를 따르는 것처럼. 기억이 흘러넘치는 기억 비대증 시대에는 기억은 좋은 덕 virtue , 망각은 피하고 극복해야 할 나쁜 병disease로 인식된다.

이진우 김민정 외 지음, <호모 메모리스> (책세상, 2014년), 19쪽

이진우는 기억이 병이 될 수 있고 망각이 오히려 덕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는 최수철의 소설속 구절을 따와 기억이란 “꼭 필요할 때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전혀 원하지 않을 때 불쑥 처들어와서 우리를 짓밟아 댄다”며 망각이 때론 삶에 유익하다고 강조한다.

이진우의 글을 다시 보자.

우리 기억은 결코 우리 과거를 비춰주는 거울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억의 주체가 어떤 욕구과 문제를 갖고 있는지 알려주는 단서일 개연성이 키다. 이런 점에서 기억과잉은 과거의 현재에 대한 과다한 지배이다. 우리는 현재를 지배하기 위해 과거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서는 안된다. 기억과잉은 현재 지각을 방해할 뿐 아니라 삶을 만들어나갈 힘을 파괴한다. 위의 책, 35쪽

 

덕수의 기억은,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감독과 보수언론과 대통령이 하고 싶은 기억은 과거로 하여금 현재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시켜 주는 기억들이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눈감고 오직 가족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한 희생만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만들어나갈 힘이 파괴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위 글처럼 기억의 주체가 가지고 있는 욕구와 문제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영화다. 그래서 <국제 시장>은 나쁜 영화다.(씨네 21 평점, 5.33   네이버 평점 5.88 - 10점 기준).

사도바울은 고린도 후서 3:10에서 “지금까지 영광으로 빛나던 것이, 이제 훨씬 더 빛나는 영광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로마서 15:15에서는 기억을 새롭게 하는 일이 매우 어렵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임을 암시한다. 바울이 <국제 시장>을 봤다면 기억의 왜곡을, 덕수의 희생의 편협성을 매우 질타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도 기억할만한 희생이 많은 사람이었다. 때로는 그 기억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과거에 매여 있지 않으려고 했다. 그가 한 희생은 오히려 자기 중심의 과거를 잊고 예수를 기억해 내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오직 믿음’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교회는 바울이 버리려 했던 과거의 영화를 되살리려는 보수 이념의 충실한 실천자가 되고 있다. 바울신학의 새관점 학파 주장을 따르자면 바울은 과거의 전통을 재해석한 사람인데, 그리고 야곱 타우베스의 말처럼 그것을 정치적으로 풀어낸 사람인데 지금의 교회는 바울에게서 창조도 재해석도 정치도 발견하지 않는다. 참으로 희한하게도 ‘오직 믿음’은 공동체를 위한 주체성의 회복(알랭 바디우)이 아니라 자기와 주변을 위한 성취의 도구로만 전락하고 말핬다. 덕수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가르침만을 ‘오직 믿었던 것’처럼.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김기대  gilbert@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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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가 (1.XXX.XXX.3)
2015-01-04 00:59:12
찬성:14 | 반대:7 찬성하기 반대하기
좋은 건 좋은 것으로 해속하는 곳이 어떨까요?
편집자의 삐뚤어진 시각이 진리를 찾는 다른 기사까지도 신뢰하지 못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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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11.XXX.XXX.197)
2015-01-15 23:51:33
찬성:7 | 반대:2 찬성하기 반대하기
좋은 글입니다..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살률 우리 아버지가 물려주고 싶은 세상이 이런 세상은 아니였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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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해집시다 (108.XXX.XXX.236)
2015-01-09 02:30:09
찬성:8 | 반대:11 찬성하기 반대하기
뉴스엠&뉴스앤조이 기자 편집장 발행인 등 기타 관계자님들 예수는 믿고 있소? 만약 믿는다면 맨날 교회 개혁, 개혁하면서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방향이 이렇게 없단 말이요. 크리스천의 개혁은 오직 성경, 복음을 위한 개혁이지 사회개혁이 아님을 명심하기 바라오. 그리고 이런 글 자꾸 쓰려면 걍 때려 치소. 난 이제 여기 안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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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175.XXX.XXX.148)
2015-01-05 12:42:25
찬성:11 | 반대:8 찬성하기 반대하기
난 여전히 김기대 목사의 글이 신선하다. 한국교회에 이런 글쟁이들이 많아야져 한다. 뉴스M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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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 (76.XXX.XXX.67)
2015-01-04 20:47:54
찬성:16 | 반대:11 찬성하기 반대하기
처음에는 김기대 목사님의 글이 신선해 보였다.
그런데, 이젠 알았다. 이 목사님이 얼마나 삐뚤어진 사람인 것을....
그리고 알았다. 이분은 댓글을 읽지 않는 다는 사실을...
본인이 보는 시각만 옳다는 사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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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71.XXX.XXX.5)
2015-01-05 04:21:26
찬성:11 | 반대:7 찬성하기 반대하기
지나가다님의 댓글에 동감입니다.
김기대 목사님의 글에는 예수, 혹은 복음이
없습니다.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 어쩌겠습니까 ?
"냅둬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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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24.XXX.XXX.54)
2015-01-04 14:26:54
찬성:8 | 반대:6 찬성하기 반대하기
영화로만 봐라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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