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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야훼가 겨우 <엑소더스>를 살렸다리들리 스콧 감독, <노아>를 너무 의식했나?

리들리 스콧 감독은 그가 연출한 영화 <엑소더스> 개봉에 앞선 인터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양심을 주었다며 영웅 모세가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 모세를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었다. 신의 계시를 받은 모세가 아니라 양심을 가진 인간 모세, 왕보다 뛰어난 지도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할 줄 알았던 인간 모세, 이성과 믿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세, 살아있는 신(람세스)보다 더한 능력을 가졌지만 결코 신이 되기를 거부했던 모세의 모습이  2014년 연말 연시 성수기를 겨냥한 영화 <엑소더스>의 주제다.

영화의 규모를 보면 분명 <엑소더스>는 대작이다. 이집트인들에게 내려진 10가지 재앙의 모습이나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화려했던 이집트 문명을 재현하는데 많은 공을 기울인 흔적이 나타난다.

그런데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들에게도 이미 익숙한 이야기들을 보여주기 위해 장면들 하나 하나에 쏟은 감독의 욕심이 과잉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떤 평론가의 표현처럼 ‘눈(장면)이 머리(생각)를 압도’하고 말았다. 결국 돈 좀 들여  잘만든 어린이 주일학교 교재용 ‘출애굽기’처럼 되어 버렸다.  감독이 새롭게 해석한 출애굽의 이야기가 (만약에 있다면) 영화의 규모에 묻혀 버렸다.

이런 과잉은 감독의 의도와 달리 모세의 영웅성을 부각시킨다. 중동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차용했던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여호수아 신드롬’처럼, 기원전 이집트와의 갈등 속에서 민족을 구해내었던 모세는 스펙터클한 장면으로 꾸며진  영화 속에서 충분히 영웅스럽다. 

스콧 감독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근본주의자들처럼 모세를 영웅으로 보고 있다고 착각한 것 같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고뇌하는 모세를 그린 의도가 영화를 탁월하게 만드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엑소더스>에 대한 평론가들의 리뷰도 ‘인간 모세’로 이야기를 풀어 간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이기에 뭔가를 발견은 해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으니 거의 이런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이미 모세는 영웅 이전에 인간이다. 그의 살인의 추억은 모세의 불같은 성격을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주저하고 두려워하던 모세는 주어진 소명의 크기 앞에서 벌벌 떨던 인간의 모습 자체였다.  <엑소더스>에 나오는 모세는 본래 우리가 알고 있던  모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새것이 없는 주일학교 교재용 영화가 맞고,  인간 모세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목표로 삼은 대상 관객이 누구인지 불투명하다.  기독교 영화같은 ‘선교’도 없고, 모세 역할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이 영웅 영화 속에서 철학적 배트맨을 연기했던 <다크 나이트 라이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2년)의 ‘철학’도 없이 ‘과녁을 비껴간’(<뉴시스> 영화평) 영화가 되고 말았다.

너무 혹평인가? 나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0가지 재앙을 합리적으로 분석하던 철학자나 종교적으로만 해결하려 했던 궁정 사제가 마침내 람세스에게 사형을 당했던 장면처럼 이성에도 신앙에도 너무 매몰되지 말라는 교훈 정도는 주고 있다. 분석은 하되 해법은 없는 이성과 신앙의 한계도 감독은 보여주려고 애썼다.  인간의 한계 상황을 인정하고 신에게 모든 것을 걸었던 모세와 스스로 신이 되어 홍해까지 뛰어든 람세스의 갈등 구조도 상투적이기는 해도 봐줄만은 하다.

   
▲ 모세와 아내 십보라, <엑소더스>는 출애굽 사건에서의  여성의 비중을 강조하려 했지만 상대적으로 모세의 비중이 너무 컸다.

모세를 히브리인으로 인정해 준 모세의 양어머니 공주의 결단, 누이 미리암의 역할, 강렬한 연기력을 지닌 시고니 위버가 맡은 람세스 어머니 왕비의 암투,  모세를 믿어 주었던 아내 십보라를 통해 여성들이 출애굽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조연이 아니라는 점도 감독은 보여주려 한 듯한데  역시 ‘영웅’ 모세에 묻혀 버렸다.  여호수아를 고통을 모르는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모세 보다 못한 존재로 슬쩍 스쳐 지나가는 장면도 인간의 고통이 결코 약점이 아니라는 교훈도 던져 준다.

이 부분에서 리들리 스콧은 지난 봄에 출시된 <노아>(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를  의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성서를 왜곡했다는 기독교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좋은 영화였다. 위기에 처한 현대 문명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영화는 충분히 담았었다. 발터 벤야민이 개시했고, 슬라보예 지젝이 대중화시켰던  ‘메시아적 개입’과 ‘신적 폭력’이  <노아>에는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인류의 종말이 곧 역사의 종말인가’라는 묵직한 질문도 던졌었다. 하나님의 폭력적 계획 앞에 순종할 수 밖에 없었던, 그래서 관객들의 모순된 비판(인류 전체가 홍수로 멸망하는 장면보다 손녀를 죽이려는 노아에 더 분노했던 관객들의 모순) 을 받아야 했던 노아와는 달리  <엑소더스>에서 모세는 여호와에게 마구 덤빈다. 그런데 ‘하나님과 맞서는 인간’ 도 사실은 많은 영화에서 이미 보여주었던 ‘클리셰’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노아 모두가 비판 받기를 자처했던  <노아>가 더 독창적인 영화다.

호렙산에서 야훼가 꼬마로 나타나다

전문가들의 평점도 <노아> 보다 훨씬 못한 <엑소더스>를 그나마 살린 부분이 있다면 야훼가 꼬마(아이작 앤드류 분)로 현현한 장면이다. 호렙산에서 떨기나무가 불붙을 때 ‘나는 나다’라고 나타난 야훼는 어린 아이였다. 리들리 스콧은 꼬마를 내세움으로써 영화의 웅장한 장면들을 중화하는 효과도 보고 있으나 꼬마는 그 이상의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 야훼 역할로 분한 영국 아역 배우 아이작 앤드류

첫 번째는 성탄절을 고려한 아기 예수의 이미지다. 야훼는 <노아>에서 처럼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모세가 열심히 십계명 판을 새기고 있을 때 옆에서 차를 끓여주는 존재로 나타난다.  한번 결정한 것을 거두지 않는 완고한 신이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더러는 생각을 바꿀 수도 있는 유연한 신이다. 생긴 것이 악동같지만,  그래서 재앙의 잔인성을 따지는 모세에게 꼬마 야훼는 “그들이 멈추어 달라고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싶다( I want to see them on their knee begging for it to stop)”라고 말할 정도로 강경하면서도 홍해를 건너는 군중 속에 숨어 모세와 함께 하는 자상함도 보인다.  바울이 이해한 모세는 율법적 인물인데, 아브라함 이전 부터 있던 (요한복음 8:58) 예수는 모세가 신보다 더 강경해지지 않도록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모세를 따른다.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 (노만 주이슨 감독, 1971년)에서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정든 마을로부터 추방되어 절망에 빠져 유랑길을 떠나던 유대인 행렬을 따르던 바이올린을 켜는 실루엣처럼 어린 야훼는 모세를 지킨다.

두 번째로 어린 야훼는 영화 속 모세의 어린 시절이다. 이집트 왕궁에서 자란 모세는 왕가의 적자가 아니기 때문에 왕이 되고 싶은 야망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욕심과 절제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모세는 함께 자란 적통 왕자 람세스에 대해 선망과 경멸을 품고 살아 왔을 것이다.  선왕 역시 모세를  더 임금 감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모세는 자기를 살리기 위해 자기를 죽이는 방법을 터득해 왔다.

성서를 잠시 잊고 이야기 하자면 모세는 호렙산에서 지금 자신의 어린 시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민족을 살리기 위해 나를 죽여야 하는 심적 갈등이 성장 시절의 경험과 중첩되어 모세의 내면에 나타나고 있다.

‘신들과 왕들(Gods and Kings)’이라는 영화 부제처럼 온갖 신들과 왕에 대한 야망을 품은 사람들이 넘쳐나던 시절에 모세는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신들과 왕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세 번째로 <엑소더스> 영화가 리들리 스콧의 동생 토니 스콧에 대한 추모사를 담고 있듯이 감독에게 어린 야훼는 동생 토니다. 2012년 8월 투신자살한 토니는 형보다 더 뛰어난 감독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탑건(1986년), <크림슨 타이드>(1995년), 데자부(2006년) 등의 명작을 남긴 그가 자살한 나이가 68세이기는 했지만  부모에게 자식은 늘 어린 아이인 것처럼 형 리들리에게도 토니는 어린 아이였을 것이다. 비록 그는 갔지만 리들리 스콧은 동생이 자신의 나머지 인생에 계속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어린 야훼로 표현했다.  

리들리 스콧은 거장이다. <엑소더스>는 거장의 명성에는 못미치는 영화였지만 그나마 꼬마 야훼가 영화의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그래서 거장은 못해도 중간은 가나보다.

김기대, 편집장 / <뉴스 M>

김기대  gilbert@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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