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원주민 권리 선언'의 마지막 승인국되다

2010년 12월 16일. 북미주 원주민들에겐 잊지 못할 순간이다. 지난 UN총회에서 결의된 '원주민 권리 선언'(UN Declaration on Rights of Indigenous Peoples, 2007년 9월 13일)을 오바마 대통령이 승인한 것이다. 이날 열린 '제2회 백악관 원주민 컨퍼런스(The 2nd White House - Tribal Nations Conference)'에 참석한 미국 내의 565개 원주민족 대표들에게 오바마 대통령이 커다란 선물을 안긴 셈이다. 

▲ 2010년 열린 '제2회 백악관 원주민 컨퍼런스'에서 변화를 약속하는 오바마 대통령. (출처 : 백악관)
'원주민 권리 선언' 승인국이 주는 의미?

'원주민 권리 선언'이 북미 인디언들에게 뜻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선언문이 유엔 총회에서 143개국의 찬성표로 통과될 당시 4개국(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만 이 안건에 반대하였다. 이 네 나라는 선진국으로서 원주민이 상대적으로 많은 나라일 뿐 아니라, 지금까지 원주민 문제로 힘겨루기를 계속 해온 나라들이다.

이후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세 나라들은 차례로 승인을 했지만, 미국은 끝까지 버티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호주(2009년 4월 3일 승인), 뉴질랜드(2010년 4월 19일 승인), 캐나다(2010년 11월 12일 승인) 이어 미국이 마지막으로 승인하면서 전 세계가 '원주민 권리 선언문’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워싱턴 DC와 헬레나(Montana 주)에 있는 '원주민법 연구소'(Indian Law Resource Center)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로버트 쿨터(Robert T. Coulter)가 지난 30년 동안 이 작업을 주도해왔다. 그는 '원주민 권리 선언'이 전 세계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을 이렇게 평가했다. 

"원주민 권리 선언문은 원주민들이 자결권, 재산권 및 문화권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게 된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이 선언문을 승인한 것은 지난 30년 동안 원주민들의 어려웠던 여정에서 절정의 순간이었다. 1976년 6개 부족연합과 내가 이 선언문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이 선언문이 전 세계의 국가들로부터 지지를 받게 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당시 대부분의 나라에서 원주민들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었지만 우리는 보다 큰 개념인 국제법으로 눈을 돌렸다"

쿨터의 발언에 비추어볼 때 비록 어려운 일이었지만 보편적 가치에 대한 소망과 한걸음이라도 '지금 여기서’(here and now) 시작해야 한다는 중요한 진리를 엿볼 수 있다.

반성과 변화의 진정성 보여온 오바마 정부

오바마 정부 집권 이후 오랫동안 주변으로 밀려있던 원주민 문제가 미국 정치에서 중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2009년 11월 5일에 열렸던 제1회 컨퍼런스 때는 미국 정부가 그간의 과오를 반성하고 변화를 다짐하기도 했다.

“그동안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들보다 아메리칸 드림으로부터 소외되고 주변화된 사람들은 없었다. 조약은 위반되기 일쑤였고, 약속은 깨어졌으며, 여러분들의 토지, 종교, 문화와 언어는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이 상황을 바꿀 때가 왔다” (오바마 대통령)

현장에 있던 원주민 대표들에게는 오랜 역사를 통한 상처와 아픔을 치유 받고 위로받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며 기뻐하는 북미 원주민 대표들. (출처 : 백악관)
지금까지 미국 원주민과 정부와의 관계는 한 마디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부의 어느 누구도 그 문제에 성의 있게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흔히 "문제는 많지만 방법이 없다"라는 말만 반복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9년 8월의 "미국 정부는 원주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요지의 상원 결의안(캔사스 주 공화당 샘 브라운백 상원 의원 발의)이 통과되고, 그해 11월에 열린 1차 컨퍼런스에서의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미국 원주민 역사와 관련하여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오바마 정부의 반성과 변화 의지는 제2회 컨퍼런스는 전에 비해 한 걸음 진보해, 지난 1년 동안 정부가 어떠한 조치를 취했는지에 구체적인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특히 교육 문제, 건강관리 문제, 범죄 퇴치, 그리고 일자리 창출 문제 등을 주제로 다루었다. 상호 소통을 위해 두 명의 보좌진인 Kim Teehee(인디안 문제 수석 자문위원, 체로키 출신)과 Jodi Gillette (내치 전담반, 라코타 수우 출신)을 소개했다. 오바마는 "진정한 변화는 우리 각자가 각자의 일을 얼마나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참석자들에게 협력과 소통을 요구했다.

특히 토지 문제와 관련하여 연방정부가 원주민들의 토지 상실 부분을 보전할 것도 약속했다. 그동안에는 토지 신탁을 위해서는 주정부와 연방 국무부가 협의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 경계 내의 토지를 연방신탁관계로 귀속시키는 것에 주정부가 매우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원주민 공동체를 위해서 토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 연방대법원의 최근의 판례를 상기시키며 원주민 대표들을 고무시켰다.

이러한 일들은 그동안 미국 정부의 원주민 정책이 차별적이었던 데서 대등한 관계로, 또 소극적이었던 상황에서 적극적인 상황으로 나아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특히 현재 원주민들의 상황은 '정책 차원'이 아니라, '가치관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수차례 천명했다. 원주민들의 상황은 미국 정부와 국민들의 도덕성과도 연결시킬 수 있다는 말로도 풀이된다.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요청하는 오바마 정부 

"미국 정부는 원주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상원 결의안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사과와 변화를 위한 약속, 미국 정부의 '원주민 권리 선언' 승인까지 최근 일어나는 변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원주민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열악한 상황에서 살아온 현실에 무관심했던 미국인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오바마 정부가 요청하는 것이다. 
 
비록 현재의 상황이 충분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의 전환은 갑작스럽고 큰 사건에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비전과 노력이 있다면 쿨터의 고백과 같이 30년 후 세계의 역사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안맹호 / 북미 원주민 선교사(Dana Minist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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