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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목소리가 있다'2세 여성 목사로 미국 한인 교회에서 살아남기

한인이자 여성인 테레사 조 목사(세인트존스장로교회). 그가 한인 교회 내에서 여전히 주변인인  '여성 목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자신의 블로그에 적었던 글이 반향을 일으키며 <소저너스>에 게재됐고, 이를 저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 번역 게재한다. 테레사 조 목사는 이 글이 1세와 2세 사이의 갈등이나, 남녀 간의 성적인 대결로 비치길 원치 않았다. 다만 한인 여성 목회자들의 타는 목마름을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길 원했다. (편집자 주)

나는 미국장로교에서 40번째로 안수 받은 한인 여성 목사다. 미국장로교 소속 한인여성목회자회(KACW)가 2011년에 20주년 기념식을 하는 것을 고려해보면 40이라는 숫자는 매우 작아 보일 수도 있다. 여하튼 지금도 많은 2세 한인 여성(Korean-American women)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애타게 안수라는 광야를 헤매고 있지만 기댈 돌도 우물도 물 한 잔도 없는 곳에서 갈증을 태우고 있을 뿐이다.

모세라도 나타나서 돌산을 부수고 장애물을 격파해서 목회자로서 하나님을 섬길 기회와 자유가 샘물처럼 솟아나오길 기대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많은 2세 한인 여성 목회자들이 목회지를 찾지 못하거나 찾는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소명을 받아 신학대학원에 진학할 때만 해도 2세 한인 여성으로서의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었다. 소명을 받았을 당시 내 머릿속에는 단 두 가지의 생각뿐이었다. 나는 화학자가 되기 싫었고, 무엇인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내가 난생 처음 만난 여자 목사가 우연찮게도 한인인 메리 백 목사였다. 그는 한인 여성 중 4번째로 안수 받은 목사였다. 백 목사는 내가 나의 소명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줬을 뿐 아니라, 그는 나의 모세였다. 그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살아있는 증거였다. 목말라 애타고 있었던 나에게 백 목사는 내 목마름을 달래준 첫 물 한 잔이었다. 그 한 잔의 물은 정말 내 갈증을 풀어주었다.

올해 열렸던 219차 미국장로교 총회는 한인 2세 여성 목회자들에게는 매우 역사적인 모임이었다. 우리 중 6명이 커미셔너로 봉사했으며 4명은 분과의 책임자 역할을 맡았었다. 최원재 목사는 부총회장 후보였고, 예나 황 목사는 내셔널캐피탈 노회의 노회장이었고, 아이린 박 목사는 신학 문제 위원회의 부위원장이었으며, 나는 사회정의이슈분과 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았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느낀 자긍심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리 모두는 다른 한국인처럼 김치 없이는 밥 먹기 힘든 사람들이다. '미국장로교한인교회전국총회(NCKPC)'가 미네소타한인장로교회에 마련한 한식 점심을 먹으려고 모두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점심 시간에 마련된 주최 측의 프레젠테이션에는 남성 목사들의 업적만 전시될 뿐이었다. 한창 떠오르고 있는 여성 한인 목회자들은 주변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라는 상실감은 김치로 달랠 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감정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존재가 보이지도 않는 일은 전혀 새로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지난 수년간 모세도 아론도 없었다. 아무도 우리를 광야에서 인도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고 물이 나오도록 바위를 깨줄 사람도 없었다. 우리에게는 서로 밖에 없었다. 이 광야를 헤쳐가기 위해 우리는 뭉쳤다. 안수의 과정을 함께 헤맸다.

고통의 경험과 이야기에서 나온 눈물 한방울에 목을 축여야 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더 큰 목적을 서로에게 상기시키며 한 발 한 발 어렵게 걸음을 옮겨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모세였다. 우리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며 다른 사람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함께 노력했다.

지난 미국장로교 총회에 올라왔던 한미노회 설립 안(남부 애틀랜타 대회 산하에 한미 노회를 새로 만드는 안, 역자 주)이 우리 소수의 목소리로 부결되는 장면을 지켜봤던 우리가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기대와 의도는 투표 결과를 바꾸는 데 있지는 않았다. 다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한인 여성 목회자의 입장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다는 단순한 의도였었다. 내가 한미노회 설립의 적법성을 다투었던 것은 성차별적 요소에 대한 노회의 민감성, 여성에 대한 안수, 한국말을 못하는 2세와 3세 한인들에 대한 노회 내에서의 역할 인정에 대한 노력이 아직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은 잃을 것이 적었기 때문에 나라도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한인 목회를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발언이 비교적 자유로웠다.

   
 
  ▲ 생명의 강을 형상화 한 미국장로교 219차 총회 로고.  
 
한미노회 설립 안건이 해당 분과위원회에서 압도적으로(찬성 43, 기권 0, 반대 2) 통과했기 때문에 내가 사실 바랐던 것은 마이크를 잡고 발언할 기회를 얻는 정도였었다. 나는 막상 총회장의 투표 결과가 125 찬성, 514 반대로 나오자 정말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우리의 자그마한 목소리와 노력이 전체 총회장에 울린 것이었다. 그들은 투표로 우리의 목소리에 대답해 주었다. 목마른 우리의 목을 축여준 정도가 아니라 그들이 보내준 성원에 빠져 잠길 지경이 됐다.

이번 총회의 주제는 "믿는 자의 가슴에서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8)였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이렇게 외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라.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마셔라"(요한 7:37-38)

우리의 목소리가 들렸던 그 순간만큼 나에게 이 주제가 생생하게 살아서 다가온 적은 없었다. 이제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미국에 사는 한인들 사이에 대화의 공간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려는 길을 함께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글·테레사 조 목사(세인트존스장로교회) / 번역·김성회 기자

테레사 조  newsnjoy@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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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 (71.XXX.XXX.249)
2010-12-15 02:40:53
찬성:3 | 반대:1 찬성하기 반대하기
미국장로교 내에 많은 한인여성 목회후보자들이 청빙을 받지 못해 힘들어 하고 있다. 서로의 아프고 힘듦을 나누기는 하지만, 그 누구 하나 인도하는 자가 없고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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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74.XXX.XXX.70)
2010-12-15 02:11:14
찬성:1 | 반대:6 찬성하기 반대하기
Rev. Cho could be satisfied with the result. It is easy to tear down something. But it is much more difficult to build up. Korean Presbytery has a long way to go, I understand. But without starting something, nothing happens. Rev. Cho and other Korean women pastors frustrated many Korean pastors, instead of encouraging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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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지문서 (71.XXX.XXX.95)
2010-12-14 00:58:04
찬성:3 | 반대:1 찬성하기 반대하기
" 우리에게도 목소리가 있다"고 절규하시는 테레사조 목사님의
그 절규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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