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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노회 부결, 이후를 묻다비지역노회, 동전의 양면

한인 2세이자 미국장로교단 소속 목회자인 테레사 조 목사는 지난 219차 미국장로교 총회에서 한인 2세들과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한인 교회 내의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이로 인해 이미 대회의 승인을 받고 총회에 올라왔던 한인노회 설립이 한인 여성 목사들의 반대 발언으로 부결됐다. (관련 기사) 이후 이 문제를 두고 교단 내 한인 목회자들 간의 진지한 대화의 자리가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테레사 조 목사의 참석기를 저자의 동의를 얻어 전문 번역 게재한다. (편집자 주)

그가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네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야곱이 말하였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어찌하여 나의 이름을 묻느냐?" 하면서,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창세기 32:27-30)

이 순간은 야곱 인생의 전환점이다. 야곱은 이 순간 이름이 "하나님과 겨루는" 이스라엘로 바뀌었다. 이 앞 장면에서 야곱은 장자의 권리를 빼앗은 채 도망갔다 형 에서를 만나러 돌아오던 중이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지만 야곱이 이 순간을 기쁘게 받아 들였을 리는 없다. 형이 복수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순간 그는 누군지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나 씨름을 하게 됐다. 야곱과 밤새 겨루던 이는 결국 야곱을 힘으로 못 누르게 되자 다리를 다치게 했다. 히브리어로 다치게 하다는 "사라"이다. 사라의 정확한 의미는 "먼지를 일으키다"이다.

야곱만 하나님과 씨름을 한 게 아니다. 하나님도 야곱과 씨름을 하셨다. 결국 이 일을 겪고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됐다. 하나님과 만난 흔적을 가지게 된 것이다. 혹자는 죽음의 상흔을 입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야곱은 죽고 이스라엘로 새롭게 태어난 흔적이다.

이 사건이 야곱의 인생에서 중요한 다른 이유는 이 지역을 "브니엘"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하였다. (창세기 32:30)

주어진 이름에 자랑스럽게 살아가기

이름은 매우 중요하다. 내 이름은 은경이다. 은은 은이라는 뜻도 되고 수정처럼 깨끗하다는 뜻도 된다. 경은 종소리를 뜻한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났을 때 종소리처럼 맑게 진실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길 바라며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한 때 설교가 되질 않고 꽉 막혔던 때가 있었다. 그 때 나는 내 이름의 뜻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자랐던 교회는 목사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지던 곳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옮기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항상 옳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걸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옮겨야 한다는 부담은 언제나 있어왔다. 야곱의 경우와 비슷하게,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내 이름의 뜻을 듣게 된 순간이 바로 내 이름의 의미대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전환점이었다. 여전히 설교라는 것이 내가 흔쾌히 나서는 일이 되진 못했다. 하지만 설교를 한다는 자체를 매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219차 미국장로교 총회는 내가 말하게 될 것이라 기대하지 못했던 진실을 말하는 기회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총회에서 내가 발언했던 그 순간이 내 이름을 살아냈다고 느껴지던 첫 순간이었다. 하지만 "진실"이라는 것은 매우 복잡하다. 진실은 매우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진실은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한미 노회 설립에 대한 1세, 2세의 진지한 토론

나는 지난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렸던 목회자, 신학자 협의 모임에 참석했었다. 미국장로교의 '신학과 예배 위원회'(Office of Theology and Worship)가 마련한 행사였다. 지난 219차 미국장로교 총회의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한미 노회 설립 안건 부결에 대한 평가와 토론이 주요 의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 접근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이 행사를 준비했던 캐빈 박 목사는 언어를 기반으로 한 한미 노회 건설은 기술적이나 이성적인 해결책을 찾는 일이 아니라 신학적인 해결책을 찾는 일임을 일깨워 줬다. 총 15명의 한인들이 함께 참여했다. 그 구성을 보자면 8명의 남자와 7명의 여자, 5명의 1세, 6명의 1.5세, 4명의 2세, 11명의 목사와 2명의 신학대학 교수, 원목, 교단 직원으로 되어 있었다. 참가자들은 짧은 신학적 고찰을 작성해서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이런 식의 세대, 성별을 뛰어넘는 대화는 매우 드물었었다.

만약 내가 내 인생의 다른 전환점을 언급해야 한다면, 이 모임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의 유교적 문화에서는 여성은 언제나 조용히 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존재여야 했다. 나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왔다. 이 모임에서 나는 말하고 나의 의견이 전달 됐다.

또한 한국인 2세이자 나이가 어린 우리에게는는 어른들과 의견이 다를 경우 반대 의견을 나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었다. 그런 행동은 예의에 어긋나 보인다는 이유였다. 또한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한국말과 영어가 함께 오가는 대화에는 끼어들기가 매우 힘들었다. 정확하게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한다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임에서 2세이자 젊은 축에 들어간 나에게도 발언할 기회는 주어졌다. 모임에서는 영어와 한국말이 자연스레 오고 갔고 우리는 서로의 말을 통역하고 옮기며 대화를 풀어갔다. 각자가 작성해서 나누었던 짧은 신학적 고찰은 토론을 매우 진지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 줬다.

우리는 함께 "씨름"을 했다. 긴 토론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이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가였다. 이게 단순히 비지역 한국어 노회(non-geographic presbytery)라는 방식에 동의하는가 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훨씬 많은 문제들이 여기 엮여 있었다.

목회자, 신학자 모임이 나에게는 음양이 교류하는 순간이었다. 솔직히 말해 미국장로교 총회가 끝난 후 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료들과 친구들은 내가 목소리를 높일 용기를 가진 점에 대해 칭찬해줬다. 남부 애틀랜타 대회 산하에 한미 노회를 두는 안이 부결된 것이 한인 커뮤니티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가십도 듣긴 했다.

서로 다를 처지, 해오지 못했던 말들

내가 사역하는 곳은 한인교회가 아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인종, 성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사역을 하고 있다. 여하튼 콜로라도 스프링에서의 모임은 내가 생명을 불어 넣고자 하는 의도로 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을 앗아가는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자리였다.

이러한 토론을 통해 나는 기쁨과 슬픔의 양 극단을 경험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줬고 또 내가 말 할 기회가 있음이 기뻤다. 한편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치러야 했었던 희생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었다. 우리의 작은 목소리가 총회장에 울려 퍼진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같은 한국인을 배신하고 내부의 문제를 끄집어냈다는 비난을 듣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우리 같이 힘없는 여성 목회자 몇 명의 목소리가 투표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이것이 불순종과 불복종으로 비쳐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나는 감정의 양극을 오가며 씨름해야 했다.

하나의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한미 노회를 만드는 데 진짜 이슈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에 따라 해결책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인 여성이 교회의 부름을 받기란 쉽지 않다. 이 노회 소속이 된다면 여자의 입장에서 목사가 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교회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안수를 받을 수 없게 되어있다. 만약 한미 노회가 여성 목사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안수를 받을 기회를 폭넓게 제공한다면, 한미 노회에는 더 이상의 문제는 없는 것일까?

한미 노회 소속인데 한국말을 할 수 없고 젊다면 리더십에 들어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만약 한미 노회가 청년 사역자들에게 리더십이 될 기회와 동시통역을 제공하거나 2세, 3세 한인들이 지역 노회로 옮길 수 있도록 협조한다면 한미 노회에 더 이상의 문제는 없는 것일까?

일부 한미 노회는 노회 운영이나 정책에 있어서 미국장로교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들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따지고 보자면 지역 노회에서도 빈번하게 생기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내가 속해있는 노회도 그런 노회 중 하나다.) 특별한 문제 하나는 언어 장벽이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이 상급 조직과의 연계를 가로막는 중대한 장애물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해결 된다면 한미 노회에 더 이상의 문제는 없는 것일까?

이런 문제들만이 다는 아니다. 이 외에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더 있다. 사용 언어가 다르거나 신학적으로 차이가 있는 비지역노회 건설에 애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한미 노회를 만들고 교회를 모으는 것이 교단 내의 여러 논쟁적 이슈에 대한 투표 및 발언권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한미 노회를 만드는 편이 상급 기관과 접촉을 최소화 하면서 한인들 끼리만의 조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비지역노회는 다양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러한 주장들이 현실적인 면도 있고 대부분 사실인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주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1983년 남가주대회가 처음으로 비지역노회 건설을 제안했다. 처음의 제안 이유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성장하고 있는 한인 장로교회를 위한 것이었다. 한인장로교회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신앙 공동체가 같은 언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의 편리함 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을 함께 나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미국장로교가 다양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가 더 큰 이슈라고 본다. 그것이 성별이 되었던, 인종이던, 동성애, 성정체성 이슈든, 이민자 이슈든, 사회 정의나 신학적 이슈든 다양성이 보장 돼야 하는 것이다. 비지역노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는 지금,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많은 개교회들이 미국장로교(PCUSA)에서 탈퇴해 EPC(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복음 장로 교회) 등의 교단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장로교가 다양성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토론해봐야 한다. 지금 우리 교단에는 다양성을 주장하고 보장 받을 공간이 충분한가? 아니면 아주 책임이 작은 그룹들로 나누어 버리는 것이 유일한 정답인가? 미국장로교는 한미 노회가 미국장로교의 정책을 따라 상급 기관과 협의 하에 노회를 운영하게 하는 것으로 씨름하고 있다. 상호 연계가 우리 교단의 기본 원칙인가? 나에게도 답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해야 할 시기라는 점은 확신한다.

아마 내가 참석했던 목회자, 신학자 모임 같은 신학적 토론 모임을 더 많이 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토론 모임은 다른 의견들이 공존할 수 있고 성령의 이끄심 아래 대화를 해가는 모임이라 생각한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하나님을 대면하는 체험이 가능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주제들과 씨름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씨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모임은 끝났지만 하나로 모아진 결론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기도를 통해 서로의 고통과 눈물을 나누었고 또한 희망도 볼 수 있었다. 아무 문제도 아직 해결된 것은 없다. 아무런 대책도 발표된 바 없다. 하지만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관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시작이다. 이것이 미주한인 기독교 커뮤니티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공동체에도 이름이 붙여질 만한 가치가 있다. 미국장로교 안에서 이런 다양성과 관련된 논의가 계속됐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테레사 조 목사 (세인트존스장로교회) / 김성회 기자 번역

테레사 조  newsnjoy@www.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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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랑 (76.XXX.XXX.250)
2010-12-04 12:12:49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김성희 기자님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많은 도전을 받았고 같은 미국 장로교 목사로서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어로된 글을 볼 수 있으면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제 이메일은 hwangsooa@hanmail.ne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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