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지옥(하데스)에 간 것으로 된 사도신경을 개신교에서도 고백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성공회를 제외하고 나머지 개신교 사도신경에서 ‘지옥’은 사라졌다. 성공회 사도신경에는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로 되어 있다. 가톨릭에서는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로 번역했다. 지옥, 죽음의 세계, 저승의 신학적 함의는 차치하고라도 ‘지옥’이 주는 어감에 불편함을 느끼는 신도들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최초의 신앙고백 형태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이네아스(Aeneas)는 고대 로마의 시조로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아이네아스의 노래)’의 주인공이다. 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신곡’에서 그는 지옥과 연옥의 안내자로 단테의 길안내를 맡았다. 저승여행이라는 신곡의 모티브도 서사시 ‘아이네이스’로부터 빌어온 것이다.아이네아스는 누구인가?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목마 안에 숨어있던 그리스군이 목마에서 나와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기 전 아프로디테(미의 여신)가 그의 아들 아이네아스에게 트로이에서 도망치라고 한 덕에 아이네아스는 목숨을 건졌
12세기 중반 서구 교회에는 동방의 어느 지역에 그리스도교 사제가 다스리는 왕국이 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어마어마한 영토의 크기, 각종 진기한 동식물, 풍부한 농산물, 강력한 군사력 등 갖출만한 것은 다 갖춘데다가 기독교 왕국이라고 하니 서방 교회가 이 소문에 솔깃한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왕은 그런 권력에도 불구하고 겸손까지 하여서 스스로 사제의 칭호를 택해 바깥 세계에서는 그를 사제왕 요한 (Prester John)으로 불렀다.소문은 소문을 낳아 사제왕 요한이 서방 교회에 보냈다는 편지가 100여통 이상 돌아 다녔고, 곧 사제
1987년 경상북도 영주에서 5미터 높이의 머리 잘린 석상이 발견되는데 그 옆에는 ‘도마’로 읽힐 수 있는 ‘히브리어’가 암각되어 있었다. 한국 교회사의 시원을 더 앞으로 당길 수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계는 이 석상을 ‘도마상’이라 부르며 흥분했지만 그 때 흥분에 비하면 요즘은 관심이 많이 시들해진 상태다. 네스토리우스파 교회가 당나라까지 와서 경교로 활동한 것은 사실이니 당(唐)과 교류가 많던 신라에 그 흔적을 남겼다는 ‘역사’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도마의 흔적이? 지난 회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페스트, 몽골 제
성서에서는 역할이 미미했던 도마가 어쩌다가 인도교회의 창시자로 명토박아졌는지는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한신대에서 가르치던 이장식 교수의 ‘아시아 고대 기독교사(기독교문사, 1990)’에 따르면 인도 교회를 세운 도마가 누구였던 간에 3세기 경 인도 교회가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며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도 인도 교회 대표자의 이름이 등록되어 있었다. 교회를 세웠다는 도마가 예수의 제자 도마인지 예수의 쌍둥이 형제 도마인지 아니면 제 3의 인물이 그 이름을 도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인도 교회는 있었다는 말이다. 당연히 그
죄를 지은 사람이 가는 지옥은 기독교만의 고유개념은 아니고 모든 종교가 가지고 있는 공통적 요소다. 오히려 히브리인들에게 지옥은 늦게 찾아 왔다. 기원전 7세기 말 쓰여진 이사야서 마지막 절에 지옥 비슷한 묘사가 처음 나오기는 하지만 조르주 미누아의 표현처럼 히브리인들은 지옥의 존재를 놓고 기원전 3세기까지 ‘망설였다’.그들이 나가서 나를 거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다. 그들을 먹는 벌레가 죽지 않으며, 그들을 삼키는 불도 꺼지지 않을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들을 보고 소름이 끼칠 것이다.(이사야 66:24, 새번역)기원전 3세
마니교에서 도마행전은 성례전에도 쓰일 정도로 그 위상이 사도행전보다 높았다. 사도행전이 바울의 행적을 중심으로 쓰여진 것을 감안하면 마니교는 바울의 위상을 낮게 봤다는 말이 된다. 도마는 빅3제자(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아니고 이후 정통 교회사에서 보면 바울의 신들메를 맬 자격도 없는 위치인데 마니교에서는 어떻게 위상이 높아졌을까?그전에 먼저 베드로와 바울이 선교역할을 나눈 결정부터 살펴 보아야 한다.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가 되었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 끈질기게 사도의 직분을 요구했던 바울에게 베드로를 비롯한 원사도들은
엘라가발루스 로마 황제(재위218년~222년)는 외가가 시리아로 정통 라틴계열이 아닌 최초의 황제다. 그의 외가는 시리아의 태양신 엘라가발루스를 섬기던 제사장 집안이었고 그 역시 어린 시절 다마스커스에서 가까운 에메사에서 제사장 교육을 받기도 했다. 그의 황제 별칭은 여기서 나왔다. 재위시 여러 난잡한 기행으로 4년만에 무참하게 살해당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혈통도 이런 기행을 과장하는데 한 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자란 에메사는 지중해와 중국 인도를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엘라가발루스가 에메사 출신이라는 소문때문이었을까? 인
그동안 도마복음에 대한 연구서는 많았으나(오강남, 김용옥) 도마행전에 대한 연구는 빈약했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 보면 두 권의 도마행전(정학복, 조영길)이 나오는데 모두 절판상태다. 도마복음 연구서들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의외다.도마복음이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영지주의 시각을 담은 것이 해석학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더 흥미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복음서’ 중에서도 설화적 내용없이 예수의 어록만으로 되어 있는’오직 말씀’이라는 독특성도 장점이다.반면 도마행전은 도마의 행적 중심이다.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이 담긴 사